독일 로맨틱가도 여행 : 로텐부르크
내게 있어 여행은 ‘아름다움’을 찾아다니는 시간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먹고 느끼기 위해 기꺼이 돈과 시간과 몸과 마음을 쓴다. 그 과정에서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순간들을 겪어내야 할 때도 많지만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 그 고생마저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되는 곳은 로텐부르크다. 로맨틱 가도의 소도시 중 하이라이트로 알려진 유명한 관광 도시이고 유독 일본인,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곳에서 일본인은 하루를 묵고 한국인은 반나절 머문다 한다. 그 정도면 다 볼 수 있는 크기다. 우리는 이 작은 도시에서 두 밤을 자기로 했다. 다 보는 걸 떠나서 조금이라도 천천히 누리고 싶었다.
느릿느릿 거닐며 마주한 로텐부르크에서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기록으로 남긴다.
부부가 함께 꾸리는 공간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서부터 그냥 반해버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상상하며 걸었다.
작지만 깨끗한 숙소를 만났다. 부부가 운영하는 공간이었는데, 문 앞에서 벨을 울리자 남편분이 어디선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관광지에서 에어비앤비 하자. 그니까 우리 다음 살 곳은 관광지로!’ 식의 이야기를 예성이에게 종종 꺼낸다. 오토바이 타고 오는 아저씨를 보며 훗날의 아저씨가 된 예성이를 상상 속에서 합성해봤다. 부부가 함께 꾸리는 공간. 우리도 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예성이는 그냥 웃기만 하고 속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역시나 현실적인 사람이다.
예쁜 거 옆에 예쁜 거
이 동네의 모든 길목이 궁금했다. 두 밤 자는 사실에 안도하며 천천히 거닐었다.
과일과 야채 코너 옆에서 꽃을 파는 슈퍼가 많다. 심지어 싸다. 낭만에 드는 비용이 높지 않은 건 참 부러운 일이다.
종이로 만든 사물들을 모아 파는 상점이 있었다. 홀린 듯 들어가 알록달록한 마스킹 테이프 하나를 샀다. 짐 분실로 이거 저거 많이 샀지만, 필요한 게 아니라 사고 싶어서 산 물건은 이 테이프가 처음이었다. 행복했다.
여긴 기념품 가게도 이렇게 예쁘다. 예쁜 것 옆에 예쁜 것을 마주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틈틈이 남기면서.
여러 번 스쳤던 똑같은 길목
정시마다 시계탑에서 인형극이 펼쳐지는 광장이다. 한산하다가도 종소리가 들릴 즈음이 되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잉? 이게 다야?’ 싶은 심심한 인형극이기에 인형극보다도 모여든 사람들 구경하는 게 재밌었다.
로텐부르크 하면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길목이다. 모든 관광객들이 이곳을 배경 삼아 사진을 남긴다. 그만큼 예쁜 길가라 아침, 낮, 저녁 자주 지나치며 우리 역시 사진을 남겼다.
공원에서 먹는 아침
이 작은 문으로 들어가니 공원이 있었다.
한낮에 와서 더위와 피로를 식히며 앉아 있다가, 다음 날 여기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이 공원에 앉아 나는 사과를, 예성이는 전 날 저녁으로 먹다 남은 피자를 먹었다.
눈으로는 초록과 그와 어우러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코로는 향긋한 꽃 냄새를 맡고(피자 냄새가 좀 무드를 깼지만), 귀로는 적당한 데시벨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피부로는 쾌청한 바람을 느끼며, 새콤달콤한 사과까지 한 입 베어 무니, 만족스러웠다. 물론 날파리는 성가셨다.
해질 즈음 성벽길에서
두 밤 잘 동안 해 질 녘이 되면 성벽에 올라 노을로 물드는 하늘과 지붕을 구경했다. 독일은 해가 9시 즈음 져서 노을을 보러 허겁지겁 갈 일이 없었다. 여기 해는 우리처럼 느려서 좋았다.
둘째 날 저녁 9시 즈음에는 뷔르츠부르크 숙소 호스트 카린이 웰컴 선물로 준 프랑켄 와인을 들고 성벽에 올랐다. 사람이 뜸한 성벽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석양을 보며 와인 맛을 봤다. 낭만적인 것 같으면서도 쪼그려 앉아 와인을 홀짝이는 모습이 참 없어 보이기도 했다.
제일 꼭대기에서 본 로텐부르크
난 높은 전망으로 보는 뷰에 관심이 별로 없다. 손길이 느껴질 만한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뷰를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예성이는 멀리서 보는 광활한 전망을 좋아한다. 덕분에 예성이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경험을 했다. 광장에 있는 교회의 종탑에 오르는 것이었다. 더위에 약해 조금만 더워도 혼이 나가지만, 예성이가 좋아하는 걸 같이 하고 싶어 네 발로 올라야 할 가파른 층계를 꾸역꾸역 올랐다.
막상 올라오니 좋았다. 뷰도 좋았지만 아이처럼 신이 난 예성이를 보는 게 더 좋았다.
사지 못한 그림책
예성이가 좋아하는 ‘높은 곳에서 전망 보기’를 했으니, 내가 좋아하는 걸 눈치 안 보며 당당하게 하러 갔다. 그림책을 좋아하기에 해외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언어로 된 그림책을 꼭 산다. 나를 위한 기념품이다.
낯선 글자가 가득한 서점에서 그림만 보고 무언가를 느끼며 책을 고르는 이 시간이 내가 여행에서 참 사랑하는 시간이다. 로텐부르크에도 제법 큰 서점이 있길래 신나서 그림책 코너를 뒤졌다. 하지만 막상 사려니 들고 다니기 무거울 것 같아 독일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뮌헨에서 사기로 하고 애써 고른 책들을 돌려두었다. 한 가지 슬픈 사실은 독일에서는 그림책을 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뒤에는 분실된 짐 문제를 해결하느라 서점에 갈 시간이 없었다. ‘이때 샀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러니 독일을 한 번 더 가야 하나 싶기도 하다. 이상한 핑계인가.
상상했던 그 장면
로텐부르크를 떠나기 전 오전 시간은 위치도 좋고 빵 맛도 좋아 다시 들린 한 카페에서 보냈다. 뜨거운 볕을 잘 피해간 시원한 그늘 자리에 운 좋게 앉았다. 그곳에서 예성이와 같이 말씀을 묵상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 뒤 각자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여행에 가기 전 유럽에 있는 우리 모습을 상상했을 때 딱 떠올렸던 장면이 그 순간이었다. 마침 푸른빛 옷을 입은 사랑스러운 남매가 나타나 그 장면을 더 예쁘게 만들어 주었다.
로텐부르크에서의 시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다웠다. 두 밤 자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