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경험하는 신혼여행
오늘은 뉴질랜드에서의 마지막 날. 빨래를 포함하여 짐을 싸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어제 산 연어와 무려 퀸스타운에서 샀던 옥수수로 아침을 먹었다. 호주로 가는 비행기는 4시 30분이라 시간도 넉넉했다. 구경할 다른 곳이 많겠지만 보타닉 가든이라는 큰 공원을 구경하기로 했다. 장바구니로 챙겨 온 가방에 과자랑 쿠키, 빵, 우유와 제티도 챙겨 내렸다. 강이 공원을 감싸고 세계수같이 크고 높은 나무가 많고 작은 연못에는 오리 가족이 있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새소리도 들렸다. 지도로 봤을 때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컸다. 공원 안에 골프장도 있다. 한 바퀴 돌아볼까 했는데 공원이 너무 커서 로즈파크와 식물원 등 가고 싶은 스팟을 찍어 다녔다. 공원에는 산책 나온 강아지가 많았는데 종종 리드줄을 잡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강아지들이 모두 점잖았는데 다른 강아지와 만나도 짖지 않고 사람에게도 뛰어오거나 짖지 않았다. 체계적으로 교육을 잘 받은 것 같아 부러웠다.
공원을 한참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외국식 모임이 열릴 것 같은 멋진 카페도 구경하고 공원 가운데 눕거나 앉아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3시간이나 지났다. 1시에 공항으로 출발해 1시 30분에는 도착해 출국 수속을 밟을 계획이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차에 돌아오니 차 왼쪽 뒷유리창이 깨져있었다. 차 뒤에 둔 가방도 없어졌다.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는 풍경이라 처음엔 둘 다 멍했다. 곧 정신 차리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카드와 여권 등이 중요한 게 든 가방은 오빠가 매고 있었다. 도난당한 가방에는 무엇이 들었는지부터 곱씹어봤는데 이북리더기, 목베개, 선글라스 정도만 우선 떠올랐다. 사소해서 더 어이가 없었지만, 이를 수습하는 게 먼저였다.
서로 검색 결과를 공유했는데, 우선 뉴질랜드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영어 담당이었던 내가 이를 맡았는데 평화롭게 강아지랑 산책을 하러 나온 할머니 두 분께 사정을 설명했다. 응급번호 111로 전화하니 말이 너무 빨라 듣기도 말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할머니께 대신 통화를 부탁드렸다. 경찰관과 통화하는 할머니와 다시 차량 근처로 왔는데 오빠는 로밍한다고 통신사랑 통화 중이었다. 할머니는 우리 이름, 메일 주소, 영문 주소 등을 경찰관에 전달했다. 철자까지 하나하나가 고비였다. 오빠는 그사이에 창문 유리를 일일이 빼고 통화하는 할머니께 그늘도 만들어줬다. 어떻게든 무사히 처리되길 바랐는데 경찰이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메일로 리포트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필요한 것도 여행자보험 청구를 위한 리포트라 우선 알겠다며 통화를 끊었다. 할머니께 감사 인사를 드리니 뉴질랜드에 그렇게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며 행운을 빌어주셨다. 평화로운 산책 시간에 이렇게 시간을 내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통화가 다 끝나니 1시 30분, 렌터카도 반납해야 해서 마음이 급해졌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렌터카 보험으로 처리가 될지, 반납하면서 얼마나 청구될지 가늠해 봤는데 가늠이 안 됐다.
우선 렌터카 주차 후 반납하며 사고 접수를 했다. 최고 금액인 4,612달러를 오빠 카드로 긁었다. 수수료까지 더하면 얼마나 나올지 예상도 안 됐다. 이후에는 사고가 빠릿빠릿하게 안 되어 멍했다. 오빠는 불안해하는 나를 언제나처럼 든든하게 지켜줬다. 우리가 할 일은 없을지 하나하나 정리했다. 렌터카는 플랫폼에서 최대 보험으로 빌렸는데도 타인이 손상한 부분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소용이 없었다. (대책 없는 플랫폼. 다신 쳐다보지도 않을 거다.) 결국 렌터카 업체에서 얼마를 환불해 줄지가 관건인데 오빠가 아는 선에서 금액을 예상해 봤다. 한국에 돌아가 우리가 든 여행자보험으로 도난당한 물건에 대해 보상 처리가 가능한지 알아보고 처리하기로 했다. 명확한 것은 없고 막연하게 기다리는 일뿐이라 정리를 해도 머리는 무거웠고 많이 놀랄 일이다 보니 초조하고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해도 잘 안되었다. 이 혼란한 과정에서 오빠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문득 한국 유심이 가방 안에 있었다는 게 떠올라서 유심 분실신고도 했다.
다행히 비행기를 놓칠 정도의 시간은 아니라 수화물을 부치러 에미리트에 줄을 섰는데 우리 예매 내역이 조회되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나는 에미리트에서 예매를 했는데 담당자가 콴타스라고 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순간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래도 비행기를 놓친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콴타스에서 무사히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기다렸다. 비행기를 타고는 금방 기절했다가 일어나 기내식을 먹고 하늘도 구경하다 오빠랑 같이 웹소설을 읽었다. 휴대폰 배터리를 열심히 쓰고야 보조배터리도 잃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사소하지만, 필요한 짐들이 그 가방 안에 있었다.
큰 일을 치렀으니 시드니에 도착해서는 우버나 지하철로 그냥 편하게 가도 되지만 성격상 그게 안 돼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 방식으로 여차저차 움직였다. 가장 오래 묵을 시드니의 숙소에 도착하자 그제야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시드니는 숙소가 비싸서 예약할 때 이래저래 고민을 했는데 숙소에 와보니 필요한 건 다 갖춰져 있고 짐을 펼칠 공간도 충분한 여기로 예약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중엔 하우스키핑 문제로 조금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첫날의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은 지쳤지만 배는 고파왔기에 짐을 풀고 근처 마트에서 약간의 장을 봐 요리도 했다. 맛있게 먹고 잘 준비를 할 때 깨달은 놀라운 사실은 치약과 칫솔도 잃어버린 가방 안에 있다는 거다. 뉴질랜드에 선물로 두고 온 것들이 참 많다며 다시 마트로 갔다. 내일 아침에는 이서 님께 추천받은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할 생각이라 8시 반에는 일어나서 준비하는 걸 목표로 잡았지만, 늦잠을 자도 괜찮다 생각하며 잠들었다.
<신혼여행 이야기책 제작을 위한 질문>
Q. 오늘 날씨는 어땠나요?
Q. 기억에 남는 아침 풍경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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