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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여섯째 날, 벌써 여행을 회고하다

여행 중 속상한 일이 생기지 않긴 힘들다

by 다정

오늘은 크라이스트처치로 향하는 날이다. 도중에 테카포 호수에 들를 예정이긴 하지만 가장 긴 여정이라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점심도 싸서 출발할 계획이었다. 오빠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자는데 이번에는 자다 깨서 소파에서 잠들었다고 했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잘 잤기 때문에 오늘은 내가 오빠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일 예정이다. 내가 먼저 씻고 아침을 준비했다. 어제와 비슷하게 배와 포도, 빵에 바질페스토와 살라미를 얹어 아침을 차렸다. 이젠 체크아웃 전 짐 싸기도 능숙하다. 남은 과자와 식량까지 야무지게 싸서 체크아웃했다. 예보대로 날은 흐리고 비가 왔지만, 결빙은 없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 인간이라 눈 위에서 운전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에게 긴급 건으로 일 연락이 왔다. 이를 처리한다고 오빠는 휴대폰을 오래 들여다봤고 그런 오빠를 기다리며 점점 속상해졌다. 신혼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게 ‘일에서 벗어나기’라 더 그랬다. 특히 오빠는 언제 올지 모를 클라이언트 연락에 항시 대기 상태였기에 이번 여행에서는 일 생각하지 않고 일 연락받지 않길 바랐다. 당장 안식년을 만들어줄 순 없지만 우리의 신혼여행에서만큼은 오빠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까지 오빠를 괴롭히다니 너무 속상하고 화도 났다. 오빠는 속상해하는 내 눈치를 봤는데 내가 왜 속상한지를 말하면서 데이트할 때도 늘 휴대폰을 챙기고 갑자기 오는 클라이언트 연락도 당연히 받아야 했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눈물이 났다. 어쨌든 이후로 일 연락이 오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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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카키 호수를 지나 도착한 테카포 역시 에메랄드 색의 아름다운 호수였다. 호수 바로 앞에 돌로 만들어진 ‘선한 목자의 교회’도 유명했는데 정말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오빠는 교회가 호수 가운데에 있는 줄 알고 기대했는데 그건 아니라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이러나저러나 멋진 풍경에 사진과 영상 진을 많이 찍고 크라이스트처치로 향했다. 다행히 크라이스트처치와 가까워질수록 구름이 갰다. 가는 길에 노란 꽃이 잔뜩 핀 강이 나왔는데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차를 세웠다. 이거야 말로 렌터카 여행의 묘미였다. 점심으로 준비한 빵을 챙겨 강가로 내려갔다. 다리 아래로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시골에서 다리 밑으로 피서를 가던 모습과 겹쳐졌다. 강가로 내려가 보니 노란 꽃이 잔뜩 보여 진짜 봄 같았다. 뉴질랜드의 4계절을 전부 경험하고 있는 우리도 정말 여행자 같았다. 양버들나무가 예쁘게 있는 들판에서도 멈추고 양도 가까이서 보고 크라이스트처치까지 가는 길은 멀었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게 즐기며 이동했다. 크라이스트처치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직선도로였다. 오빠도 이렇게 길게 직진만 한 적은 없다고 느낄 정도로 직선이었다. 역시 땅이 큰 나라는 달랐다. 한참을 달리다가 버거킹, 맥도널드 등 익숙한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를 지나쳐 조금 더 달리자 작은 시골 마을에 나왔다. 남섬 최대의 도시니까 더욱 도시 같을 줄 알았는데 높은 건물이 없어서 그런지 퀸즈타운과 비슷한 시골 마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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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의 마지막 저녁이라 크라이스트처치를 둘러보기보단 기념품을 사러 마트에 갔다. 마트를 구경하며 기념품을 하나씩 담았는데 외국 마트는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누구에게 무엇을 챙겨줄지를 정하고 목록을 채웠다. 뉴질랜드 기념품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마누카꿀, 포포크림, 프로폴리스 치약, 초록홍합 영양제가 후보였다. 초록홍합 영양제는 어렵게 발견하였는데 너무 크고 비싸서 호주에 가서 다른 걸 찾아보기로 했다. 기념품과 함께 뉴질랜드 맥주, 국민 쿠키와 연어 등을 사서 저녁 요리를 해 먹기로 했다. 돌아와서 보니 연어는 노르웨이산이었다. 오빠는 그새 마트에 있는 빵집에 시선을 빼앗겼고 그런 오빠를 보며 종업원이 웃고 있었다.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 덕분에 미트파이 같은 빵을 하나 사 왔다.


저녁으로는 간단하게 라면을 먹고 후식으로 와인과 치즈, 국민 쿠키라는 초콜릿쿠키를 먹었다. 신행 내내 친구들이 결혼식 사진을 보내줬는데 사진을 볼 때마다 그날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곱씹을 때마다 감사하고 즐겁다. 뉴질랜드에서의 마지막 날, 삿포로 때를 떠올리며 이번에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말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많은데 기록하지 않으면 휘발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여행을 돌아볼수록 뉴질랜드 여행이 끝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회고를 마무리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3가지를 공유했는데 오빠는 압도적인 자연경관의 밀포드 사운드, 오늘의 쿡산 등산 그리고 브리즈번 공항에서 내가 울던 모습이라고 했다. 나는 퀸즈타운에 처음 도착해서 본 풍경과 밀포드 사운드와 쿡산을 처음 봤을 때 그리고 오리, 양, 소, 새 등 수많은 동물이 가까이 있을 때였다. 아직까진 여행이 생생하게 기억나 다행이다.


문득 유튜브에 들어갔는데 지드래곤 신곡이 나와서 뮤직비디오도 함께 보았다. 한국에서도 잘 챙겨보지 않는 뮤비인데 여기선 시간은 많고 해야 하는 일은 없으니 그런 것도 함께 편하게 보게 되었다. 와중에도 쿠키를 계속 먹었는데 국민 쿠키라는 명성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너무 달지 않고 퍼석하지도 않고 적당히 촉촉하고 바삭했다. 문득 얼마나 살이 쪄서 갈까 하는 생각에 무서웠지만 이렇게 편하게 먹는 게 너무 오랜만이니 즐기기로 했다. 살은 돌아가서 빼야지! (글을 쓰는 지금까지 신혼여행에서 찐 2키로가 빠지지 않고 있다. 이제 이게 내 몸무게일까.)


<신혼여행 이야기책 제작을 위한 질문>

Q. 오늘 방문한 여러 장소 중 간직하고 싶은 풍경이나 장소가 있나요?
Q. 이번 여행 우리만의 유행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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