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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다섯째 날, 어쩌다 등산하다

구글 지도는 오르막 계산을 못한다

by 다정

오늘도 목표는 늦잠이었는데 눈을 뜨니 8시 20분이었다. 푹신한 침대에서 푹 잘 자고 일어났는데 오빠가 슬픈 꿈을 꿨다고 했다. 내가 아픈 꿈이라 꿈속에서 오열하다가 울면서 깼다는데 이야기하면서도 울었다. 나랑 관련된 일이면 눈물이 많아지는 오빠가 귀엽기도 하고 나 없으면 자기도 죽는다는 이야기를 쉽게 하는 오빠에게 단호해져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니 미리 내가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곳을 공유해 인생 퀘스트를 만들어줘야겠다 마음먹었다.


오늘 주요한 일정은 쿡산 트레킹이다. 쿡산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어 오빠를 믿고 따라가기로 했다. 아침으로 조롱박처럼 생긴 외국 배와 포도를 씻고 오빠는 퀸즈타운 마트에서 사 온 빵에 살라미와 치즈를 얹어 아침을 준비했다. 캡슐커피도 내려 마셨는데 오빠는 이번 숙소에서 에스프레소의 진한 향과 맛에 반했다. (여전히 집에서도 커피를 진하게 마시고 있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옷도 내복까지 든든하게 입고 영상을 찍을 짐벌과 도중에 먹을 간식까지 야무지게 챙겨서 나섰다.


차를 타고 입구에 도착해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든든한 설산이 배경인 평야였다. 풍경에 감탄하고 짐벌로 촬영도 하며 재미있게 걸었다. 봄인데도 아직 눈이 녹지 않아 지나간 사람들의 자국을 따라 걸었다. 등산로 입구로 보이는 갈림길에 표지판이 있었다. 오른쪽 키포인트까지는 15분, 왼쪽 씰리까지는 3시간이라는데 오빠는 씰리에서 보는 풍경이 더 멋지고 30분밖에 안 걸린다고 해 우리는 왼쪽으로 갔다. (아주 뒤늦게 깨달았는데 구글 지도는 오르막을 계산하지 못한다. 오르막 3시간 거리를 30분으로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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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오르막이 시작되었는데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없고 구글 지도는 아까도 지금도 15분이면 도착한다고 했다. 이건 트레킹이 아니라 등산 아닌가 하며 의문점이 들었을 때야 검색해 보니 씰리까지는 2000계단 정도를 오르는 거였다. 지금부턴 웃음기를 빼고 열심히 오르는 거에 집중했다. 점점 더 많이 쉬었지만, 끝까지 올라가자고 기합도 넣고 다짐도 했다. 진짜 최종 그다음 진짜 진짜 최종까지 오르고 나서야 오빠가 결단을 내렸고 우리는 구글 지도상 550m를 남겨두고 돌아오기로 했다. 오빠가 보여주고 싶다던 풍경은 이미 바로 뒤에 펼쳐져 있었다. 산 가운데 큰 호수가 왼편에 있었고 우리가 올라온 길이 엄청 작게 오른편에 보였는데 너무 멋졌다. 정상이라 생각하고 들고 온 우유(cream)를 꺼냈는데 크리미한 우유가 아니라 진짜 크림이라 마시지는 못하고 귤만 까먹었다. 올라갈 땐 힘들었지만 내려오는 길에는 회복해 이야기도 많이 하며 내려왔다. 그중 하나가 돌아가면 무엇을 먹을지였다. 짜파구리와 양고기를 먹고 쉬다가 저녁으로 연어를 먹자며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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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자마자 씻고 늦은 점심으로 오빠가 양고기(양숄더)와 짜파구리를 만들어줬다. 분명 어제는 양고기를 맛있게 먹은 오빠가 오늘은 요리하면서 양고기 냄새를 많이 맡았는지 이제 양고기 냄새를 알겠다며 많이 먹지 못했다. 대신 내가 양고기를 많이 먹었다. 결혼하고 최고의 일탈을 벌였는데 짜파구리를 먹으며 콜라를 마셨고 쉬면서 짭짤한 감자칩도 한 봉지를 다 먹었다. 살찔까 걱정을 잠깐 했지만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으며 신혼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나는 <소년이 온다>를 오빠는 웹소설을 보다 낮잠에 들었다.


낮잠을 푹 잘자고 일어나서 스파도 했다. 금방 또 저녁 시간이 돌아왔는데 오빠는 챗지피티에게 레시피를 물어봐 바질 크림과 연어구이를 만들고 나는 껍질을 벗겨 회를 떴다. 회는 손질할 게 없어 금방 끝났고 구이는 비린내가 나서 어제처럼 함께 밖으로 나가서 뒤집기를 반복했다. 열심히 요리한 만큼 HOOK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우선 시원한 연어를 두툼하게 회를 떠서 먹자 우리가 생각하는 신선한 회의 느낌이 딱 났다. 한국에서부터 가져간 명이나물와사비는 고기와도 잘 어울리고 연어랑도 잘 어울려서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오빠가 처음으로 시도한 바질크림도 성공적이었고 연어가 잘 구워져 너무 맛있었다. 이렇게 풍성하게 연어 요리를 먹은 게 얼마 만인지 아주 만족스러웠다.


오늘 저녁도 비가 와서 별을 못 보는가 싶었는데 오빠가 별이 보인다고 했다. 외투를 입고 나가서 오래도록 밤하늘을 보니 정말 별이 많이 보였다. 별 뒤의 별, 별 옆의 별, 하늘을 가득 채운 별. 날이 좋았다면 얼마나 더 잘 보였을까 약간 아쉬웠지만 그래도 아예 보지 못한 것보단 나았다. 보면 볼 수록 별이 더 많이 보여서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밤하늘을 계속 보고 열심히 보았다.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를 이뤄서 너무 좋았다.



<신혼여행 이야기책 제작을 위한 질문>

Q. 오늘 먹은 음식/디저트/음료 등은 어땠나요?
Q. 오늘 하루의 특별한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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