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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넷째 날, 연어 낚시에 도전하다

by 다정

오늘은 아오라키 마운트 쿡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3시간 거리의 마운트 쿡으로 가는 길에 연어 낚시를 할 수 있는 HOOK에 들러 낚시도 하고 점심도 먹을 계획이다. 이제껏 늦잠을 못 자서 체크아웃을 하는 오늘만큼은 푹 자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그만 알람이 6시 반에 울렸다. 범인은 나였다. 어제 밀포드 사운드를 간다고 맞춰놓은 알람이었다. 눈을 뜨니 다시 잠들기 힘들어 오빠에게 더욱 미안했다. 침대 위에서 최대한 버티다가 체크아웃하는데도 생각보다 일러 시간이 조금 생겼다. 오빠가 알아본 ‘퀸즈타운 가든’으로 향했다. 퀸즈타운 가든에 들어가자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예쁜 풍경이 펼쳐졌다. 세계수 같은 큰 나무들, 벤치에 앉아서 보는 호수와 그 뒤의 설산, 유럽 정원 같은 꽃들과 연못이 있어 산책이 아니라 힐링이었다. 감탄하며 구경하는데 가벼운 차림으로 러닝을 하고 있는 동네 주민들이 있었다. 이런 풍경이 일상이라니 너무 부러웠다. 문득 저기 앞에 보이는 산은 몇 미터일까 궁금해 지도를 봤는데 우리가 보고 있는 부분은 산맥의 일부였고 정상까지는 2,000m가 넘었다. 동네 앞산이 2,000m가 넘다니 뉴질랜드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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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배는 고파왔지만 점심으로 연어를 먹을 계획이라 일부러 참았다. 대신 쿡산으로 출발하기 전에 2박 3일 치 장을 보러 갔다. 숙소 근처에는 장 볼만한 곳이 없다며 경고 메일도 받았기에 야무지게 장을 봐야 했다. 차이나 마트에서 짜파게티를 사고 2차로 유기농 마트까지 갔다 왔는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수수료. 결제할 때마다 수수료가 붙었는데 외국에서도 용서가 안됐다. 퀸즈타운에 도착해 퍼그버거에서 결제할 때부터 체크(debit)카드이지만 신용(credit)카드라고 선택해야 결제가 되었고 수수료가 붙었다. 적은 금액이라도 남은 일정을 생각하니 더 마음에 걸렸다. 해외 결제 수수료가 없는 카드로 일부러 준비해 간 거라 더 속상했다. 요모조모 찾아보니 해외에서도 삼성페이가 된단다. 이 방법이면 수수료가 안 붙겠다 싶었는데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뉴질랜드 유심으로는 카드 등록과 해외 결제 기능을 켤 수 없고 한국 유심으로 바꾸면 로밍을 안 해놔서 안 됐다. 첩첩산중. 결국 원데이 9,900원 로밍을 신청했다. 이게 수수료만큼 나오겠다 싶고 곱씹을수록 멍청비용 같아서 속상했다. 한국에서 등록해 왔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라 꼼꼼하게 준비하지 못한 나한테 또 실망했다.


이번 여행에서 유독 이런 모습이 많아 더 속상했고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여행’에서 조금씩 어긋나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내 마음이 편한 쪽으로 문제를 해결했고 여행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속상한 마음을 빨리 풀어야 했다.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르게 먹어보려고 하는데 오빠가 “이렇게 속상해하는 시간도 낭비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고 바른 말이라 더욱 마음에 불이 붙었다. 오빠에게 짜증을 내고 속상한 마음은 더 엉켰다. 바로 사과했지만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다행히 퀸즈타운을 나와 마운트쿡으로 가는 길에 고도가 높아지며 지나치기 힘든 풍경이 많이 나왔다. 한 번뿐인 이 풍경을 지금 기분으로 보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차해 풍경을 눈에 담고 사진도 찍으며 서서히 풀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장을 보고 카드와 씨름하는 내내 빈 속이었는데 그래서 더 예민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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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점심시간도 지난 1시 반, 퀸즈타운을 나와 풍경으로 배를 채우며 열심히 달렸다. 처음 보는 풍경이 많았다. 협곡 사이를 지나고 난쟁이 마을 같은 풍경도 봤다. 뉴질랜드에는 깃털 모양의 나무가 종종 심겨있었는데 모양이 귀여워 꽤 마음에 들었다. 훅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지나 한산했다. 둘 다 낚시를 해본 적은 없어 낚싯대는 하나만 빌리고 목표는 3마리로 잡았다. 미끼를 끼우는 법, 낚싯대를 던지는 법, 잡은 연어를 죽이는 법 등을 동영상으로 배웠다. 오빠가 낚시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삼각대를 세워 하이퍼랩스를 찍을 준비를 했다. 연어가 사는 연못 주변으로 참새들이 많아 동화책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알고 보니 귀여운 참새들은 미끼로 담긴 연어를 노리는 녀석들이었다. 낚싯대를 몇 번 던지던 오빠가 금방 연어를 낚았다. 낚는 것보다 죽이는 게 더 어려웠다. 오빠가 나한테 낚싯대 던지는 법을 알려주었는데 초심자의 행운은 언제나 통하는 법인지 금방 연어가 물었다. 사실 연어는 잘 문다. 그런데 잘 도망친다. 우연히 낚인 이 연어는 좀 세서 손맛이라는 걸 제대로 느끼게 해줬다. 너무 세서 결국 오빠에게 낚싯대를 맡겼다. 물 밖에 나온 연어를 보니 생각보다 컸다. 이번에는 단번에 처리하고 오빠는 또 낚싯대를 던졌다. 마지막 한 마리는 생각보다 더 잡히지 않아 이만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어쩌면 다행인 게 2마리의 연어만으로도 3키로가 넘었다. 큰 한 마리는 핫과 사시미로 나눠 요리를 부탁하고 다른 한 마리는 필렛으로 손질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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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기다리니 음식이 나왔다는 진동벨이 울리고 습관적으로 오빠가 음식을 가지러 갔다. 그런데 오빠가 돌아와서 대충 알아들었는데 확인을 위해 가봐 달라고 했다. 그제야 여긴 외국인데 조금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가서 방금 말한 내용을 다시 전달해 달라고 하니 필렛으로 손질해 둔 연어는 냉장 보관을 해 둘 테니 나중에 잊지 말고 찾아가라는 거였다. 그제야 둘 다 안심하고 연어를 먹었다. 여긴 연어를 얇게 손질해 먹는 편인지 보통 우리가 연어를 먹는 두툼한 식감은 아니었고 갓 잡은 연어였지만 생각보다 싱싱한 느낌이 안 나서 아쉬웠다. 신선한 맛이라는 건 차가운 냉기에 나오는 걸까 추측하고 2개씩 집어 양껏 먹었다. 의외로 핫으로 요리된 게 더 맛있었다. 다 먹고 나오면서 양이 많았다고 말했는데 오빠한테는 아니었다고 한다. 아마도 탄수화물이 없어서 그런 거 같다. 낚시를 생각보다 오래 했는지 나오니 4시 반이었다. 숙소까지는 2시간 거리가 남아서 라벤더팜과 퍼즐링월드는 가지 않고 바로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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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달리는 와중에 저 멀리 특이한 산이 보였다. 이제까지 본 산들도 멋졌는데 저 산은 더 멋져 보여 열심히 사진과 영상도 찍었다. 그러다 문득 오빠가 저게 쿡산인가? 하며 말을 꺼냈다. 설마 하며 지도를 봤는데 진짜였다. 우리가 저곳으로 가다니 점점 더 흥이 올랐다. 쿡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푸카키호수에 잠시 들렀는데 끝이 안 보이는 바다 같은 호수 뒤로 커다랗고 멋진 설산이 함께 보여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우린 더 멋진 풍경을 향해 열심히 갔다. 점점 멀리 보이던 산이 가까이 왔다. 코 앞까지 왔을 땐 숙소가 여기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설산의 한가운데에 숙소가 있는 기분이었다. 도착해서 체크인하고 짐을 풀었다. 드디어 세탁실도 이용했다. 코인 세탁기라 카드로 9달러를 결제하고 동전을 받았는데 이때가 뉴질랜드 화폐를 본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다. 화폐가 필요 없는 요즘 시대 여행이라는 게 새삼 실감 났다.


장거리 운전한 오빠를 위해 오늘 저녁은 내가 요리했다. 메뉴는 뉴질랜드 산 양고기(양커틀렛)구이다. 구우면서 숙소에 냄새가 밸까 봐 뒤집을 때마다 밖으로 나갔는데 이렇게까지 요리하는 상황이 웃기면서도 우리다웠다. 처음으로 햇반도 데워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부족함 없이 잘 먹고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밥을 먹으니까 만족감이 200프로였다. 즐겁게 로제 와인을 한 병 다 비우고 빨래도 정리했다. 산 속인만큼 쏟아지는 별을 기대했는데 구름이 많고 비가 조금씩 내려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꼭 볼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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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이야기책 제작을 위한 질문>

Q. 오늘을 시작할 때 기대했던 모습이 있나요?
Q. 상대와 나눈 대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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