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사고 치고 남편이 수습하기
1월 어느 날 붕어빵 맛집이라는 곳에 기어코 들러 팥붕어빵을 샀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붕어빵을 하나만 산 게 문제였는지 맛집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는지 단팥의 질감과 양에 실망했다. 부족한 팥을 충천해야 했다. 불현듯 집에 있는 팥이 떠오르며 직접 팥소를 만들어야겠다 결심했다. 도착하자마자 집에 있는 팥을 다 털어서 삶았다. 검은 봉지 하나 가득이라 양이 많았지만 '많으면 좋지'하는 마음으로 실컷 삶았다. 삶으면 불어나는지 몰랐기에 용기가 있었다.
한 번 삶고 두 번 삶고 보니 팥이 냄비를 가득 채웠다. 이 정도로 많은 걸 원한 건 아니었지만 단팥을 향한 열정이 더 컸다. 일부를 소분해 두고 나머지는 단팥과 잼을 만들기 위해 끓였다. 반은 냄비, 반은 밥솥으로 갔다. 3시간 정도 지났을까 단팥과 팥잼이 얼추 완성되었다. 작은 김치통에 옮기고도 모자라 남은 반찬통을 다 써야 했다. 어떻게 먹어야 할지 조금 걱정되었지만 완성해서 뿌듯하고 든든했다.
다음 날, 나는 하겐다즈 1+1 이벤트를 지나치지 못하고 녹차 맛과 초코 맛을 하나씩 사서 퇴근했다. 녹차와 초코는 오빠의 최애 조합이라 좋아하겠지 싶어 놀라게 하며 보여줬는데 오빠가 '어랏?' 하며 더 놀랬다. 냉장고로 나를 데려가 '나도 아이스크림 만드는 중인데~!' 하며 볼에 든 크림을 보여줬다. 무려 팥 아이스크림이었다. 오빠도 저 많은 팥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팥 아이스크림 레시피를 발견하곤 생크림과 거품기를 사 왔다고 했다. 같은 날에 아이스크림인 것도 놀랐는데 직접 만드는 팥 아이스크림이라니 감동이었다.
팥잼에 우유를 섞어 베이스를 만들고 거품기로 생크림을 치고 그 둘을 합쳐서 또 섞었다는 과정을 하나하나 말하는 오빠가 귀여웠다. 팥에 대해 고민하고 검색하다 아이스크림 레시피를 발견하고 재료를 사러 가 만들기까지 오빠의 행동이 전부 사랑스러웠다. '다정이가 좋아하겠지?' 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이렇게 행동하는 오빠의 모습에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오빠 덕분에 우리만의 이야기가 또 하나 쌓였다.
처음 만든 팥 아이스크림은 비비빅보다 더 맛있었고 레시피를 업그레이드하며 3차까지 진행되었다. 지금은 밤잼으로 만든 밤아이스크림을 먹는 중이다. 서로를 위해 마음을 쓰고 작은 일 하나에도 크게 웃으며 일상을 보내는 게 평화롭고 행복하다. 우리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앞으로도 이렇게 재미있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