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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이랑 작별하다

무슨 일을 하고 싶었더라

by 다정

순간을 수집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니까 조용한 용기가 생겼다. 습관적으로 자소서를 쓰고 결과만 기다리던 일상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나를 볼 수 있었다. "취업을 준비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지금이 순간, 사실 충분하다. 취업하면 어떤 게 달라질까? 취업에 성공했다는 하나의 이벤트로 내 삶이 완성되는 게 아닐 텐데, 그럼 내 삶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뭘 하고 싶지?" 살면서 처음으로 과제이자 목표로 정한 문제에 질문을 던졌다. 늘 목표로 정한 것을 이루면서 체크리스트에 체크를 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 질문들은 나를 흔들어놓았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었고 어떤 회사에 가려고 했더라?' 오래되어 흐릿해진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해 꺼내보고, '그 일을 지금 해볼 수는 없나? 내가 좋아하는 걸로 먹고살 수는 없을까?' 예전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질문도 던졌다.


20년도 상반기, 최종 면접을 다녀왔다. 0명이 뽑는 자리, 무슨 업무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 면접장의 분위기는 생생하다. 안내해 준 면접 시간보다 한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면접이 많이 지연되었다는 공지를 들었다. 어쩐지 대기실에 사람이 많았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 사이 어딘가에 앉아 자기소개를 곱씹고 목을 축이며 시간을 보냈다. 대기실에 들어간 지 2시간이 지나고야 면접을 보러 들어갔다. 면접관은 지친 기색이 여력 했다. 자기소개를 하고 답을 하면서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우리가 궁금해서 질문하는 게 아니라 할당된 질문을 하고 우리의 답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대기실엔 여전히 사람이 남아 있었으니 다음 지원자들을 봐야겠지. 자기소개와 질문 한 가지를 끝으로 면접장에서 나오니 7분이 지나있었다. 세 명이 들어갔으니 한 사람당 2분 남짓, 면접장을 나오면서 결과를 직감했다. 붙을 리가 없다. 이런 환경에서 누구를 뽑을 수 있을까? 면접용 정장을 입고 머리를 다듬고 서울행 기차에 올랐던 오늘 하루가 허탈했지만 담담했다. 이런 회사라면 나도 일하고 싶지 않다 생각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불합격이었고 나는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 2주 뒤에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이제 취업이랑 작별해야 할 시간이었다. 지난 몇 년간 나를 이렇게 저렇게 잘게 부수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최선을 다한 연애는 헤어지고 나서도 미련이 없듯이 취업과도 그랬다. 몇 년 동안 또 다른 나였던 '취업준비생'이라는 단어를 벗어던지는 일이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고, 무작정 제주도행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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