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간다
당시의 나를 위로한 책들이 많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막막하고 힘들 때 책은 답을 줬다. 한 문장이 아니라 여러 책의 여러 문장이 나를 건져 올렸다. 책을 읽고 좋았던 문장을 옮기고 또 책을 읽고 또 옮기고 그러다 보니 세상 모든 것에서 옮길 거리가 보였다. 이맘때쯤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는 비공개계정이 아니라, 공개계정으로 새로 만들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올릴 게 없어서 올릴 게 없다고 생각돼서 잘 쓰지 않았는데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은 남기고 싶었다. 책 표지와 내가 좋았던 문장을 하나둘씩 옮겼다.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미약하게 세상과 연결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달보다 별이 잘 보였던 밤, 봄을 맞이하는 개나리, 내가 좋아하는 카페의 창가자리까지 순간을 수집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메모장을 샀다. 아트박스 메모장 코너에서 어디에 기록하면 기분이 좋을까 하며 한참을 골라 'WRITE YOUR MEMO'라고 쓰여 있는 노란색 메모지 콘셉트의 메모장을 샀다. 생각노트라고 이름 붙였다. 이때부터 어디 나갈 때마다 노트와 펜을 꼭 챙겼다. 드라마나 영화 속 대사, 오늘 나의 기분, 친구와 대화에서 좋았던 문장 등을 옮겼다. 잘게 쪼개어진 나를 담을 수 있는 단단한 그릇이 생겼다. 메모장 하나를 샀을 뿐인데 이때부터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일상 속 반짝이는 순간이 많아지고 사소해 보이는 순간도 행복하고 감사했다. 취업 준비한다고 집에 있으니 그 덕에 가족들이랑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젊은 시절 아빠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보리와 산책을 나가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 서로의 생일에 분주하게 생일상을 차리는 과정, 아버지와 함께 과일을 사러 가는 짧은 길도 소중하고 행복했다. 이 순간을 내가 흘려보내지 않고 감사하며 보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조금씩 나라는 사람을 알 것 같았다. 맛있는 바닐라라테를 찾는다며 카페를 갈 때마다 바닐라라테를 시키는 친구가 부러웠는데 이제는 나도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 사람, 순간을 알 것 같았다. 나는 조용하고 해드는 카페에서 마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봄이 오길 기다리다 누구보다 빨리 봄을 맞이하려는 사람이고, 누군가의 장점을 빨리 찾아내는 사람, 칭찬하고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 감정에 솔직하고 싶은 사람이다. 점점 나를 알아가는 내가 만족스럽다.
남들이 당신을 설명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남들이 말하게 하지 마라.
/ 취향의 발견, 이봉호
옮은 건 뭐고 틀린 건 뭘까. 나한테 옳다고 저 사람한테도 옳을까. 나한테 틀리다고 저 사람한테도 틀릴까. 내가 옳은 방향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해도 한 가지는 기억하자. 나도 누군가에게 개새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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