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도망치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어머니가 다른 건 몰라도 책 사주기에 진심이어서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는 늘 책이 많았다. 그 책을 다 읽으면 또 새 책이 생겼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모습을 떠올리자면 만화책 <그리스로마신화> 전집이 우리 집에 온 날, 1편을 먼저 읽는 언니를 기다리다 내가 1편을 받고 그다음 편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또, 가족들은 저녁을 먹고 있는데 나는 빨리 먹은 건지 저녁을 거른 건지 혼자 소파 위에서 <몽실언니>를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 가족들이 운다며 놀릴까 봐 숨죽여 울었는데도 들통난 기억이 있다. 또 중학교 도서관을 매일같이 다녔던 기억, 다독상을 받으려고 독후감을 엄청 썼던 기억까지. 책을 읽는 걸 좋아한 건지,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한 건지 내용은 기억 남지 않지만 내가 앉아서 책을 끝까지 읽어낸 기억들이 많다.
학년이 올라가고 책 읽을 시간이 줄면서 책과는 멀어졌던 시기가 있다. 그럼에도 가장 좋아하던 공간은 도서관이었고 한국 소설 코너 사이를 걸으며 익숙한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고 몰랐던 소설을 발견하는 기쁨, 아무렇게나 걷다가 지금 내 것 같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은 늘 내 옆에 있었다. 관성적으로 습관적으로 책은 또 내 가까이에 왔다.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책을 많이 읽게 된 계기는 취업을 준비하면서부터 이다. 처음에는 기업을 분석하고 나라는 사람을 잘게 나눠서 인재상에 걸맞은 나로 재탄생시키는 글을 쓰는 게 나쁘지 않았다. 작은 일에도 큰 의미를 찾는 건 내가 잘하는 거였고 하고 싶은 일도 명확했고 그 일을 통해 미래를 바꾸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색다르게 나를 쪼개는 일도 다시 새롭게 나를 만드는 일도 열심히였다.
그렇게 몇 번의 상반기와 하반기를 지나니 나라는 사람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내 취업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부모님을 포함하여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혼자 부끄러웠고 조바심이 들었고 막막했다. 특히 나보다 늦게 졸업한 전 남자친구가 먼저 취업했을 때, 세상에서 제일 무능한 사람이 된 거 같았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 100% 이상 전력투구하지 않아서. 모든 이유가 '나'였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이 정도는 견뎌야지. 할 수 있다! 이땐 이런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지 못했다. 관성적이고 습관적으로 그냥 책으로 도망쳤다.
이때 나에게 책은 도피처였다. 우선 책을 읽는 순간은 책에만 빠져들 수 있어서 어떤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고 책에서 만나는 몇 문장이 나를 위로했고 다독여줬다. 또 책을 읽고 나면 읽고 난 책 목록에 적혔다.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던 시간을 그래도 어떻게든 유의미하게 보냈다는 증표로 삼았다. 한 달에 열 권이상 다이어리에 적히는 경우도 있었다. 내용은 다 흘러갔을지언정 그 목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다음번엔 무슨 책을 읽을까 하며 도서관을 가는 것도 설렜고 나에게 준 선물이라며 큰맘 먹고 산 이북리더기와 그걸 들고 한적한 카페를 가는 순간도 행복했다. 책과 관련된 모든 순간이 나를 살렸다.
만약 보기에 괴로운 그림이 있다면, 일단 피하자. 아직 서로가 마주할 준비가 안 되어 있어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때가 온다. 그때가 오면 분명하게 알게 된다. 나에게는 왜 이 그림이 좋지 않은지를. 그렇게 설명을 할 수 있게 되면, 오히려 그 불쾌감은 멀리 사라진다.
/ 심미안수업, 윤광준
팔짱 낀 채 '한계' '본질' '구조적인 문제' 운운 거창한 얘기만 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용감한 자는 자기 한계 안에서 현상이라도 일부 바꾸기 위해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내게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 어떤 이념에도 얽매이지 않고, 내 마음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떳떳하게 그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쁘게 살고 싶다.
나도 적당한 나무를 골라 오르면 된다. 그게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가 아니면 어떤가. 내게 맞고 오르는 것이 즐거운 나무라면 된 것 아니겠는가.
/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