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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버무리가 생각나는 나무

이팝나무, 층층나무, 산딸나무, 아카시아나무

by 다정

이팝나무를 좋아한다. 벚꽃이 피면서 봄이 오는구나를 느끼고 이팝나무로 여전히 봄이구나를 느낀다. 벚꽃은 흐드러지게 폈다가 금세 저버린다. 그 짧은 시기를 놓치면 봄을 놓쳐버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크게 든다. 그런 마음을 달래주는 게 이팝나무다. 연두색 새순 위에 하얀 꽃이 한가득 펴서 봄의 생기를 전해준다. 여전히 봄이라고, 이제 봄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팝나무를 보며 쑥버무리를 떠올린다. 쌀가루에 버무려 찐 쑥버무리, 흰 가루가 털털 묻은 쑥버무리, 언젠가 봄에 아버지가 사 오신 쑥버무리. 처음에는 아버지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대충 지은 이름과 두서없는 모양새에 의문이 들었는데 먹고 생각이 바뀌었다. 은은하게 나는 쑥향과 떡인척 쑥에 털털 붙어 있는 반죽이 조화로웠다. 봄을 한 움큼 먹는 기분이었다. 이걸 이제 알았다니. 비밀리에 내려오는 제철 비법을 하나 전수받은 기분이었다.


그 뒤로 쑥버무리라는 이름도 귀엽게 느껴졌다. 봄이 되면 일부러 시장을 다녔다. 쑥버무리를 파는 떡집이 많이 없어 발견하면 꼭 한 팩씩 사 와 아버지와 나눠먹었다. 올해도 역시 쑥버무리를 찾아 시장으로 향했다. 쑥이 다 들어갔을 시기라 쑥버무리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떡집을 하나하나 지나치고 제일 마지막 떡집에서 쑥버무리를 발견했다. 쑥 양은 작고 떡 양이 더 많아 보였지만 이게 어디냐며 넙죽 사 왔다. 그러고 챙겨 먹은 쑥버무리는 약간 아쉬웠다. 앞으로는 벚꽃이 필 때부터 곧 다가올 이팝나무와 쑥버무리를 떠올리겠다고 미리 다짐할 정도였다.


쑥버무리인척 하는 찰떡?


이번 주 보성에 가서 어머님과 아버님께 이 이야기를 전해드렸다. 다 같이 드라이브를 하다가 이팝나무가 보여 자연스럽게 생각이 났다. 아버님이 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이팝나무와 닮은 나무로 산딸나무, 층층나무 등을 알려주셨다. 찾아보니 모두 하얀 꽃이 펴 비슷했다. 산딸나무는 산딸기와 비슷한 열매가 나는 나무인데 꽃잎이 하얗고 귀여운 편이고, 층층나무는 가지가 층층 나서 층층나무인데 하얀 꽃잎이 피면 잎 위에 눈이 쌓인 듯한 모습이다. 아카시아 나무는 하얀 꽃 뭉치가 다발처럼 내려오는데 향이 시원하고 달콤하다. 어떻게 나무 이름과 이야기를 다 아실 수 있을까 신기하면서도 며느리가 좋아하는 나무라니, 이것저것 꺼내어 알려주시는 모습이 귀엽고 감동이었다.


감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잠이 덜 깨 비몽사몽 상태에서 오빠와 어머님이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네 시, 쌀가루, 어울리지 않는 몇 개의 단어들이 들렸다. 곧 오빠가 잔뜩 상기된 채 방으로 들어왔다. 어머님이 새벽 네 시쯤 일어나 쑥을 캐왔고 그 쑥으로 쑥버무리를 만들어 주려니 쌀가루를 사와라는 이야기였다고 전해주었다. 안 그래도 우리가 온다며 장을 한참 봐오셔서 갈치구이, 서대회무침, 꽃게찜 등 매 끼니를 다른 메뉴로 마법처럼 차려주시는데 며느리가 쑥버무리를 이야기했다고 그걸 직접 해주시려고 마음을 쓰신 거였다. 도대체 어떤 마음일지, 내게 며느리가 생긴다면 이렇게 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운 너무 큰 사랑이라 턱이 벌어지다 못해 떨어질 것 같았다.


쌀가루 원정대는 어머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쌀가루를 찾아야 했는데, 마트를 가도 떡집을 가도 쌀가루가 없어서 결국 불린 쌀을 들고 가 떡집에서 쌀가루로 만들어왔다. 그렇게 챙겨 온 쌀가루로 어머님은 슥슥 쑥버무리를 만들어주셨다. 쌀가루가 털털 묻은 쑥버무리를 정말 양껏 먹었다. 쑥향이 은은하게 나고 하얀 떡가루가 털털 묻은 쑥버무리. 생각보다 쌉소롬한 쑥맛이 더 깊게 느껴졌지만 이리 뜯어먹고 저리 뜯어먹고 늦은 봄을 양껏 채웠다. 붕어빵 만 원어치의 감동이 아직 남아 있는데 이제 쑥버무리까지 더해졌다.


시댁을 갈 때마다 사랑을 잔뜩 받는다. 언제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넓고 깊은 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받으니 잘할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가 닳을 리 없다. 충만한 사랑을 바탕으로 오늘 하루도 또 힘낼 수 있다! 이제 봄이면 이팝나무와 쑥버무리, 어머님의 사랑까지 떠오를 것 같다.


쑥 잔뜩 사랑 가득! 쑥 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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