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게 하는 친구들
올해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무척이나 바빴다. 나에게 제일 중요한 글쓰기만 하더라도 브런치, 인스타그램, 블로그, 스레드 등에서 그에 맞는 글을 쓰기 위해 계속 에너지를 쏟았다. 무엇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일지 몰라 어디 하나 진득하게 붙어 있지 못하고 몸도 마음도 바쁘게 바쁘게 움직였다. 뿌듯한 성취에는 잠시 기뻐하고 다시 나를 채찍질했다. 그러다 보니 상반기가 다 지나갔고 어느새 날이 무더워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여름휴가는 어디로 가세요라고 물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나에게 여름휴가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며칠 쉰다고 달라질 게 없으니 일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지금 쉬어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나답지 않았다. 그만큼 불안했던 것 같다.
그런데 친구들 덕분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기숙사 414호에서 만나 벌써 10년도 넘은 친구들이다. 그 사이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부산, 대구, 서울로 흩어졌지만 분기별로 시간을 내어 만나왔다. 만나는 지역은 대부분 대구이지만 종종 전주나 경주 등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자며 합심했고 한 달 전, 일본 오사카로 여행지가 정해졌다.
원래라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여행이라며 무슨 옷을 입을지 정하고 그 지역 맛집을 알아보거나 기념품을 사 올 생각에 잔뜩 신이 났을 텐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매일 똑같이 일하고 마음이 바빠서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까지도 실감 나지 않았다. 여전히 여행이 사치처럼 느껴졌고 준비하는데 최소한의 시간과 에너지만 썼다. 난생처음 통신사 데이터 로밍을 신청했고 여행자보험도 네이버에서 추천하는 대로 결제했다.
금요일 아침 각자 인천, 대구, 김해공항에 출발해 간사이 공항에서 만났다. 얼굴을 보자마자 퍼석했던 마음이 조금 촉촉해졌다. 우리가 오사카에서 만나다니 놀라면서도 셋이서만 있을 땐 대구 같기도 했다.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교토에 도착하니 풍경이 달라졌다. 고즈넉한 분위기, 일본 신사, 낮은 건물, 자판기 등을 보면서 진짜로 떠나 왔다는 게 느껴졌다. 걱정했던 것에 비해 하늘도 너무 맑고 날씨가 좋아 마음 한구석에서 해방감이 차올랐다. 장소를 옮겨가며 하루 종일 수다를 떨었다. 어떤 주제든 그간 쌓인 이야기를 가감 없이 편하게 풀어내면서 마음이 점점 말랑말랑해졌다.
여행하는 동안 현생이 바빠 덜 준비된 부분은 함께 우당탕탕하면서도 잘 보냈다. 특히 비가 쏟아지는 첫날 저녁, 가게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이야기 나눈 시간이 너무 좋았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운이 좋게 자리가 난 것도, 꽤 좋은 좌석으로 안내받은 것도 좋았지만 친구들의 생각과 감정을 깊게 이해할 수 있어 좋았고 또 나다워질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 사실 매일 혼자 일하다 보면 칭찬 들을 일도 인정받을 일도 없다. 일을 시키는 것도 나고 힘들어하며 해내는 것도 전부 나의 몫이었다. 소소한 성취는 당연하다는 듯 넘겼고 무엇이든 계속 해내야 한다며 나를 밀어붙이다 보니 잠시 쉬어가는 것도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나를 잃어갔다. 그런데 이런 나를 친구들이 살렸다. 스스로 못나 보이는 지금 상황에도 무한으로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들 덕분에 나를 다시 채워본다. 별일이라고 생각한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친구들 덕분에 웃고 떠들고 다시 나답게 있을 수 있는 중심이 생긴다.
여행을 계획하기 전부터 어디든 이 친구들과 함께라면 괜찮다는 마음이었는데 역시 그랬다. 세운 계획을 지키지 않아도 혹은 철저히 지켜도 뭐든 다 좋았다. 친구들에게도 그런 시간이었길 바라며 또 함께 여행 가고 싶다. 당연한 말이지만 짧은 여행에서 돌아와서 똑같은 일상이다. 정신이 없는 건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전과 달리 하나씩 차근히 해보자고 나를 인내하고 지켜보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나를 우선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참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