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콘텐츠는 덕후를 만든다

영화에서 생중계까지

by 다정

샤를 르끌레르, 막스 베르스타펜, 랜도 노리스, 카를로스 사인츠, 루이스 해밀턴 ... 외우기도 어렵고 낯선 외국 이름을 어느새 줄줄 읊는다. 덕후 기질이 충분한 내 마음에는 언제나 새로운 방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F1이다. 영화 F1 더무비를 본 뒤, 넷플릭스 F1 다큐인 F1 본능의 질주를 보았고 저번 주말에는 벨기에 그랑프리의 스프린트 퀄리파잉과 스프린트 경기를 생중계로 봤다. 천천히 F1에 스며드는 중이다.


남편이 F1 더무비가 재미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함께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영화는 물론이고 F1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러 갔다. 다 보고 나와서는 '그래. 이런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모든 게 다 좋아서 뭐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좋았다. 젊은 드라이버가 꼰대라고 생각했던 어른에게서 배울 점을 찾아 닮아가는 성장 서사도 좋았고 '레이싱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었다.'는 대사도 인상 깊었고 주인공이 바라던 '레이싱 도중에 날고 있는 상태'를 함께 느낄 수 있게 해 준 연출도 좋았다.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소리와 영상 편집도 좋았다.


지금은 무엇이 좋았는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좋았다는 이야기이지만- 하나씩 뜯어 말할 수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직후에는 '아, 너무 좋다. 너무 개운하다'는 단순한 말밖에 하지를 못했다. 오랜만에 영화를 통해 새로운 세계에 만나 잘 쉬었다는 생각에 집에 돌아와서도 여운에 젖어있었다. 너무 좋았던 이 감정을 잃고 싶지 않아서 F1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 'F1 본능의 질주'를 보게 되었다. 한 해 동안 F1에 일어난 주요한 이벤트를 편집하여 보여주는 다큐는 벌써 시즌7까지 있었고, 우리는 가장 최근 시즌의 첫 에피소드부터 보았다.


시즌 7 첫 에피소드는 메르세데스 팀에서 13년 동안 7번의 월드 챔피언을 한 루이스 해밀턴의 페라리 이적에 관한 내용이었다. 루이스 해밀턴이 누군지도 모르고 보기 시작했는데 F1 월드 챔피언은 어떻게 되는 거고, 경기는 어디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왜 F1이 팀 경기인지, 사람들이 F1경기를 볼 때 어디서 열광하는지 가랑비에 옷이 젖듯 알게 되었다. F1 본능의 질주는 에피소드별로 한 사람, 한 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편집해 보여주는데 그래서 초심자도 영화처럼 몰입하며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 심장도 점점 크게 뛰었다.


처음에는 '빠르게 달리는 차가 일등이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F1은 그 이상의 스포츠다. 드라이버가 차 안에서 느끼는 중력 가속도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정도이고, 레이싱마다 2kg가 빠질 정도로 체력 소모도 심하다. 팀에서는 여러 기술자들이 모여 0.1초를 앞당기기 위해 수만 가지의 데이터를 보고 분석한다. 엄청나게 많은 규칙과 규제를 피해 더 빠른 차를 만들고 나서도 안주하지 않는 모습은 확실히 자극적이다. 또, 팀마다 차를 운전하는 두 명의 드라이버가 있는데 서로 협력하면서도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도 드라마틱하다. 팀 우승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드라이버이면서도 챔피언이 되고 싶은 드라이버이기에 지시에 따르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다. 어떤 때는 조력자, 어떤 때는 경쟁자로 바뀌는 드라이버들에게 인간미를 느끼며 점점 응원하게 되었다.


열정, 몰입, 최선, 눈물, 경쟁과 격려 등 많은 덕질 포인트가 있는 F1을 왜 이제 알았을까 하면서도 지금에라도 만나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쿵쾅거린다. 우연히 알게 된 세계에 흠뻑 빠져 즐길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도 기분이 좋다. 지치지 않고 마음속에 새로운 방이 계속 생겨나면 좋겠다. (이번 주말에도 그랑프리 생중계 봐야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결국 나를 살리는 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