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수술은 없다 1

by 다정

최근에 내가 자유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있었다. 올해 초에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사이에 동그란 무언가가 잡혔다. 건드리거나 스쳐도 아프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집 근처 정형외과를 찾았다. 긴 시간 대기하다 X-ray를 찍고 진료를 봤다. 의사 선생님도 신기한 듯 동그란 무언가를 누르기도 하고 굴리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도 너무 아팠다. 그런데 X-ray로는 문제가 보이지 않았고 MRI는 더 큰 병원을 가야 찍을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무엇인지는 알고 싶어 근처 종합 병원으로 갔다. 여기서도 '무엇이다.'라고 딱 짚어주지는 못했다. 당장 MRI를 찍을 줄 알았는데 3개월 정도 기다려보고 그래도 사라지지 않고 불편하면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사라지길 기다렸다. 아팠다가 괜찮았다가, 이물감이 느껴졌다가 안 느껴지다가, 커진건가 싶었다가 작아진 건가 싶었다가 하며 3개월이 지났다. 아픔에 둔감하고 무심한 편이라 보통은 다시 병원에 가지 않았을 텐데 계속 눈에 보이고 만지면 느껴지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다시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다시 보시더니 종양 같다고 말하셨다. 3개월 전과는 다르게 허무하고 단호하게 진단을 받아 당황하면서도 종양이라는 단어에 겁부터 났다. 놀란 내 모습을 보시곤 악성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여 주셨다. 정확한 확인을 위해 MRI를 찍기로 했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MRI를 찍기로 결정하고는 진료실을 나와 상담실로 갔다. 이때부터 느낌이 달랐다. 아픈 이유를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진료가 아니라 얼마나 돈을 쓸 건지 결정하는 상담이었다. 심지어 큰 금액임에도 당장 결정해야 했다. 화질이 좋은 건 59만 원, 안 좋은 건 49만 원이고 MRI를 찍기 위해 놔야 하는 주사비-조형제-는 10만 원이었다. 아파서 병원에 왔는데 정작 내가 결정해야 하는 건 옵션을 추가할지 말지 같은 거라니 환자가 아니라 고객이 된 기분이었다. 기분은 묘했지만 그럼에도 선택은 해야 했고 화질이 안 좋은 거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49만 원짜리 MRI를 찍기로 했다.


1층으로 이동했다. 조형제를 맞으러 간 주사실에서부터 속옷이며 액세서리까지 쇠붙이를 가지고 있냐고 계속 확인했다. 한 번, 두 번 확인하며 MRI를 찍으러 갔다. MRI가 뭔지 잘 몰랐는데 동그란 터널 같은 걸 보니 영화에서 많이 본 기계였다.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영화의 한 장면이 지나갔다. 쇠붙이를 가지고 있냐고 계속 확인하고 물었던 이유, 영화에서는 꼭 그 쇠붙이 때문에 사고가 났다. 아무것도 없는 걸 몇 번이나 확인하고 터널에 들어갔다. 좁고 어둡고 이상한 전자음까지 들리는 게 공포영화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듯했다. 심지어 뒤늦게 내 치아에 있는 금니가 생각났고, 이것도 금붙이라서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패닉이 왔다. 촬영을 멈춰달라고 말해야 할까,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핑핑 돌았다.


그러다가 전문가를 믿자고 마음먹었다. 금니도 쇠붙이라면, 금니부터 확인했을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고 천천히 들숨날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음은 이상한 전자음들이 들렸다. 외계인과 교신하는 듯 들렸다가 끊겼다가 여러 소리로 바뀌었다. 소리만으로도 소설 한 편이 뚝딱이라며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유영하는 상상을 했다. 손가락 사이 촬영을 위해 앞으로 누운 상태라 버티기 위해 계속해서 다른 생각, 다른 상상을 했다. 영겁 같은 시간을 지나고 확인한 사진은 겨우 이걸 찍으려고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흐릿했고 하찮았다. 그럼에도 사진을 보니 동그라미 경계가 또렷하게 보이는 게 악성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 말에 안심하며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 날짜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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