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10분쯤, 오빠가 병실에 왔다. 전날 저녁에도 병원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하룻밤 사이 말할 것들이 또 쌓여 종알종알 이야기하다 보니 수술 시간이 되었다.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수술실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떨렸다. 아침 일찍 보호자로 오빠가 왔지만 수술실 문 뒤는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머리를 묶고 망에 넣고 수술실 침대에 누웠다. 티비 속에서 보던 수술실 그대로였다. 벽에는 현재시간, 수술시간, 마취시간이 빨간 숫자로 보이고 의사, 간호사들은 초록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의지할 곳은 하나도 없고 어디를 봐야 할지 눈을 감고 있는 게 나을지 어쩔 줄 모르는 와중에 좁은 수술침대에서 떨어지지 않게 다리가 묶였다. 불안이 가시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니 그제야 수술실이 춥게 느껴지며 이부터 몸까지 덜덜 떨렸다. 이걸 어디에 말해야 하는지, 말해도 되는지도 모르겠어서 그저 버틸 수밖에 없었다. 덜덜 떠는 나에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을 붙여주시는 선생님이 계셔 그분께 너무 춥다고 말씀드렸고 그제야 발열담요를 뒤집어쓰고 떨리는 몸을 조금 진정시킬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 수술실에 들어온 게 처음이라 잔뜩 겁이 났는데 괜찮다고 말을 붙여주시는 선생님도 마취하시는 의사 선생님도 전부 친절히 말을 붙여주셔서 계속 불안해지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간과한 게 있다면 이번 수술은 '부분 마취'라는 거다. 아무래도 부위가 작다 보니 수면 마취, 전신 마취가 아니라 수술하는 부위만 마취를 하기로 했다. 그 말은 정신이 멀쩡하고 깨어있는 상태로 수술이 진행된다는 거다. 왼쪽 쇄골과 왼팔에 용량을 나눠 마취주사를 맞고 10분 후 수술이 시작되었다.
무서워서 마취 주사를 놓을 때부터 눈을 감고 있었는데 머리 위로 어떤 감촉이 느껴져 눈을 뜨니 내 머리 위로 흰 천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수술 부위를 제외하고는 천으로 덮어둔 것 같았다. 그러고 곧 따끔거리는 감각이 왼손에서 느껴졌다. 형식상 '아프세요?'하고 물은 것 같았는데 무서워서 크게 '아파요!'라고 대답했다. 마취를 했음에도 감각이 느껴진다는 사실에 무서움과 불안함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런데 '피부에는 약간 감각이 느껴질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대답만 하시고 어떤 설명 없이 수술이 진행되었다. 그때부터 계속 눈물이 났다. 무섭고 불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울지 않아도 된다고 계속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수술 전 읽었던 《흰》처럼 흰 걸 떠올리려 했다. 흰 천, 흰 요트, 흰 배,... , 모나코, 그랑프리, F1, 샤를 르끌레르, 루이스 해밀턴, 카를로스 사인츠... 머리 위를 덮고 있는 흰 천부터 F1 드라이버들 이름들까지 주문처럼 외웠다. 오빠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오열할 것 같았다. 생각이 끊기면 다시 흰 천으로 돌아가 카를로스 사인츠까지 주문을 외웠다. 한참 동안 주문을 외우자 진료실에서만 뵙던 의사 선생님이 천 사이로 얼굴을 빼꼼 보이셨다. 다행히 예상했던 결절종으로 보인다며 수술이 잘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우는 와중에도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드리고 이제 끝인가 싶어 안심하려는데 머리 위의 천이 걷히질 않았다.
계속 왼팔에 감각이 느껴졌다. 머릿속이 생각으로 가득 찼다. 어제 설명한 그 주사를 놓는 건가? 그런데 왜 손이 아니라 팔에 감각이 느껴지지? 왜 수술이 안 끝나지? 내 팔에 뭐 하고 있는 거야! 주문을 외우지도 못할 정도였다. 불안한 마음에 눈물샘이 넘쳐서 계속 눈물이 났다.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길, 끝나기만 기다렸다. 수술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진 시간이 지나고 천이 걷혔다. 눈물 투성이인 나를 보고 아팠냐고 물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고개만 저었다. '이렇게 무서우셨으면 재워달라고 하시면 되는데...'하고 안타까워했지만, 어쨌든 수술은 끝났다.
이동하는 침대로 수술실 밖으로 나가니 오빠가 있었다. 오빠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났다. 수술이 잘 됐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남들이 다 보는데 엉엉 울 수 없어서 최대한 참았지만, 눈물샘이 이미 넘치고 있어서 오빠가 장난친다고 발을 간질어도 눈물이 났다. 바로 병실로 가는 줄 알았는데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엑스레이를 찍을 때에도 마취가 덜 풀린 왼팔을 통나무 옮기듯 옮겨 이리저리 움직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 손을 고정시킬 때에도 내 의지로 팔을 세우지 못하니 테이프로 고정시켜야 했다. 그걸 보는데 내 손이 내 손 같지 않아서, 내 팔이 죽은 것 같아서, 내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내 몸에 자율성을 잃었다는 게 이렇게 무섭고 서러운 일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정말 몰랐을 거다.
병실에 도착하고 커튼을 치고 나서야 서러움, 불안, 무서움이 터져서 엉엉 울었다. 다신 이를 겪고 싶지 않다. '건강이 최고'라는 당연한 말의 무게를 또 한 번 느꼈다. 내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는 당연한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다. 어떤 수술이든 작은 수술은 없으니 내 몸이 오래도록 건강할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 또, 나와 가족, 내 주변 사람들의 건강도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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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주변의 관심과 배려로 잘 회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