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오빠가 젖은 머리를 말려주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이게 행복이지 하면서. 나에 관해서는 눈물이 많아지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유 모를 갑작스러운 눈물에 오히려 웃음이 났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서 조급함과 부담감을 느낀 것 같았다. 온 세상이 코스피가 어쩌고를 외치고 있고, 매일 스스로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평가하다 보니 더욱 그랬나 보다. 더 빨리,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머리를 말려주면서 조금씩 바람이 빠지고, '급할게 뭐 있나. 이게 행복이지' 하는 생각으로 이어져 눈물이 차오른 것 같다.
그래, 이게 행복이다. 나 역시 매일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음에 행복하고 감사하다. 출근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퇴근해서 오빠와 저녁을 함께 먹고, 이후에는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면서 차분히 하루를 정리한다.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 느슨한가 싶어 조급해지거나 자책할 때도 있지만, 이런 감정도 자연스럽다.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거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마음을 돌보다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많이 받았는지 깨닫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어진다.
최근 읽은 책에서도 평온한 일상에 대한 감사를 이야기한다. 내가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 것,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게 돕는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에서는 과거의 이름 모를 누군가로부터 받은 많은 '증여'를 알아차리게 만든다.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틈새를 메꾸는 증여가 나에게 살리고 키웠다고 말한다. 결코 혼자서 자랄 수 없었던 아기는 부모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지만, 전부 돌려줄 수 없는 사랑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증여는 서로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받는 것이다. 부모도 아이로부터 생명력을 받았다.
그 밖에도 증여를 깨달을 수 있는 다양한 예시를 든다. 갑자기 자전이 멈춘 지구를 가정한 SF소설 <날이 밝으면>, 로마시대 목욕탕 설계기사가 현대로 넘어와 목욕탕 바가지에도 감탄하는 만화 <테르마이 로마이>, 일상에서 벗어난 특이한 부분을 관찰하는 셜록 홈즈 추리 기법,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 주기율표 등을 보자면 당연한 건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계속 곱씹게 된다. 어느새 나도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커진다. 이는 내가 만들어갈 다정한 세계에 대해 사명감으로 이어진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공감, 연민, 다정함을 더 많이 공유해야겠다. 서로를 위하고 행복을 바라고 응원하는 관계가 많아지면 좋겠다. 나를 살린 많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다정한 세계를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