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21살 그때 그대로인데
사회적 나이는 지치지 않고 쌓인다
내 나이 28, 빠른의 비애로 하나 더 가지고 있는 나이 27. 어릴 때 막연하게 상상하고 그려왔던 인생 그래프에는 25살 이후 탄탄하게 커리어를 쌓아 지금 이 시기에 결혼을 꿈꾸었다. 시간이 지나 상상과 다른 25살을 보내고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면서 삶의 궤도를 수정하였고 사실 나이에 맞는 상황이라는 건 없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그랬던 나에게 사회적 내 나이를 곱씹는 계기가 생겼다.
저번 주 주말, 친구 L이 이사한 집으로 집들이를 갔다. L의 보금자리가 바뀔 때마다 갔기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내가 자취를 한 경험도 있고 친구들의 자취방을 간 적도 많은데 보통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람들의 삶이 빡빡하게 들어선 곳들 중 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이었다. 분명 지상이었는데 성곽처럼 둘러싸인 벽을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야 그 너머의 공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성 안에는 뛰노는 아이들과 놀이터 그리고 높은 아파트 건물들이 있었다. 몇 개의 건물을 지나쳐 친구의 집에 가는 동안 규모에 위압감을 느꼈고 친구의 집이 자취방이 아니라 신혼집이라는 사실에 더욱 낯선 기분이 들었다.
27, 28. 빠를 수도 있지만 삶의 동반자와 함께 보금자리를 가꿀 수 있는 나이라는 게 체감되었다. 문득 내가 옛날에 이런 삶을 그렸던 것 같은데 하며 지난날의 내가 생각났다. 어떻게 생각이 변했는지도 함께 떠올랐다. 몇 번의 연애가 끝나고, 버지니아 울프를 알게 되고, 상상했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이런저런 많은 것들이 변화의 이유가 되었었다. 사춘기가 짧게 지나가서인지 이때 오춘기를 겪었다. 사회의 통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싫어했고 보이는 걸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 나이 같은 건 없다고, 결혼 또한 그렇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능력만 갖춰진다면 혼자 사는 게 가장 좋은 삶의 형태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렇게 살거라 믿었다. 그렇기에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탐구하고 그것으로 살아갈 능력을 기르려고 했다.
지금은 오춘기를 무사히 지나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덕분에 또 다른 꿈을 꾸는 중이다. 그리고 사회적 나이, 통념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과 매일을 같이 보내기 위해, 좋은 일뿐만 아니라 힘든 일도 같이 하기 위해 결혼을 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이렇다. "나이, 시기 이런 게 뭐가 중요해. 지금 내가 무엇이 하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지." 빨리빨리 인간이자 계획형 인간은 새로운 선택지가 생길 때마다, 다른 걸 느낄 때마다 열심히 혼란스럽다. 그래도 이 모든 혼란이 변화에 열린 멋쟁이 할머니가 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또 달라진 숫자가 맞이하는 내년의 변화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