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좋아서 책밖에 없어서 도피하듯이 책만 파고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한 달에 4권이라고 잡았던 목표를 일주일 만에 가뿐히 채우고도 남았다. 전자책, 종이책을 가리지 않고 읽다가 1년 정도 지났을 때 점차 책이랑 멀어지더니 책을 펼치는 게, 활자를 보는 게 힘들어지는 때까지 왔다. 가뜩이나 복잡한 머릿속에 어떤 정보나 글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고 아예 덮어버렸다. 그런데 바쁜 시기를 지나 "좀 쉬어야겠다!" 하자생각나는 건 역시, 책이었다.
여유롭게 책을 읽겠다고 마음먹은 날, 늘 가던 카페, 늘 앉던 자리에 앉았는데햇살이 너무 강하게 내리쬐서 블라인드를 내렸다. 새삼 내가 얼마나 오랜만에 이런 시간을 가지는지, 계절이 바뀌는 동안 책 읽는 시간을 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편하게 자리를 잡고 이어폰을 꼽아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너무 오랜만에 책에만 집중하는 시간이어서 오히려 더 집중이 안됐다. 도중에 잠깐 폰을 확인하기도 하고 화장실도 갔다 왔지만 머릿속은 점차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평소에 이 잠깐의 시간을 못 냈던 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 달달한 휴식이었다.
결국은 돌고 돌아 다시 책이다. 책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어쩔 때는 읽었던 책인지도 까먹고 다시 빌리게 되지만 그래도 읽는다. 어쩌면 내용보다 책을 집중해서 읽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주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다른 생각과 멀어져 책에만 집중하는 시간, 다른 세계에 사는 누군가가 되어보는 것 그러다 크게 공감하는 것, 현실의 나에게 와닿는 문장을 미래의 내가 또 곱씹을 수 있게 옮겨 적는 것까지 책 하나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번 주에는 잠들었던 이북리더기를 충전시키고 북클럽에도 가입했다. 밀리의 서재를 구독했다가 끊은 지 거의 1년 만에 다시 구독을 시작한다. 장비빨이라는 게 맞는 말인지 책을 펼치기가 쉬워졌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벌써 2권의 책을 읽고 새 책을 시작한다. 오랜만에 무슨 책을 읽을지 기대감에 가득 찼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좋은 책이 참 많아서 다행이다. 쉬이 감동하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한 권의 책 뒤에 적힌 수많은 출처들을 보면 그렇다. 덕분에 나는 이 한 권의 책으로 수많은 좋은 이야기, 좋은 문장을 얻어간다. 그래서 나는 책으로 돌아왔다.다시 책을 읽어본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고,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이 눈을 상관하지 않는 것이 스타일이다." 오늘 읽은 <두 개인주의자의 결혼생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