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던 4년간의 타지, 자취 생활을 마치고 2018년 졸업과 동시에 부산에서 가족과의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가족 간에 무슨 공동생활이냐 할 수 있겠지만 기숙사 생활을 포함하여 8년을 밖에서 지내다 집에 들어오니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느낌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놓인 기분이었다. 실제로 한 가족의 형태로 지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금은 각자의 방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고 덕분인지 마음의 여유도 조금씩 생겨서 굉장히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잘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자취를 하고 싶어졌다. 지금 내 상황에서 집을 나가게 되면 개고생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실제로 나갈 생각도 전혀 없지만 점점 혼자만의 시간, 내 공간이 간절해졌다. 특히 이번 생일을 보내고 이 마음이 더 커졌다. 선물 받은 귀여운 머그컵은 귀여운 식기랑 함께 사용하고 싶었고 싱글 사이즈의 토퍼는 굳이 매번 접어두지 않아도 생활에 불편이 없으면 했다. 있는 줄도 몰랐던 욕망이 갑자기 깨어나 내 일상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내 방이 필요했다.
내 방은 책상과 옷장을 빼더라도 가로로 두 걸음, 세로로 네 걸음이면 충분한 작은 방이다. 한 발짝 내딛거나 손을 멀리 뻗는 정도로 모두 닿을 수 있는 작고 소중한 크기이다. 특이점을 꼽자면 내 방 안에 동생 방으로 가는 문이 있어 동생이 내 방을 거쳐야 본인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구조 덕분인지 이사 오고 나서 내 방은 종종 사랑방이 되었다. 언니와 맥주를 마시거나 영화를 보고 동생과 동생의 여자 친구까지 다 함께 야식을 먹고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따로 내 방이 생겼다는 것에 그저 기쁘고 만족스러웠다. 모든 것이 다 좋았다. 그런데 공간에 대한 욕심과 독립에 대한 로망 등이 뒤섞여 답답함이 느껴졌다. 혼자 속으로 답답해해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바로 옆 방의 언니에게 카톡을 했다.
- 언니 나 리프레시가 필요해서 그런데 방 바꿔줄 수 있어?
언니는 그래그래:) 하고 빠르게 답장이 왔다. 언니가 거절할 거라곤 생각 안 했지만 선뜻 긍정적인 답을 줘서 조금 놀랬다. 잠깐만 생각해도 방을 바꾸는 일이 꽤나 크고 귀찮고 힘든 일인데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금방 설레기 시작했다. 답답함을 느꼈던 만큼 더 설레었다. 방을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조명은 저기다 두면 되겠다 하며 상상의 방을 채웠다. 그렇게 같은 지붕 아래 이사를 하게 되었다. 카톡을 한 지 3일 만의 일이었다.
대망의 이삿날, 눈을 뜨자마자 언니와 상의를 시작했다. 뭐부터 하는 게 좋을까. 오전 중에 버릴 짐을 먼저 버리고 짐을 옮기자. 내 짐을 복도에 먼저 뺄 테니 네가 공간을 먼저 채워. 언니랑 머리를 맞대어 큰 그림을 그렸다. 계절마다, 해마다 짐을 정리하는데도 버릴 짐은 나왔다. 나는 새 공간으로 이동하는 만큼 정리를 미루고 묵혀두었던 서랍장까지 열었다. 중학생 때 꼈던 빨간 안경테와 나의 첫 스마트폰이었던 갤럭시 S2, 분리형 배터리까지 나왔다. 서랍은 좁은데 그 안의 역사는 깊었다. 숨어있던 먼지를 닦아내고 가구의 위치까지 재배치하니 허리는 아팠지만 속은 개운하고 분위기도 환기되었다.
한 지붕 아래 몇 걸음 너머로 옮기는 건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옷장과 서랍장 그리고 책상 위까지 정리하고 나니 시간이 밤이었다. 아직 버리지 못한 쓰레기가 복도에 있지만 아버지를 모셔와 집들이도 했다. 언니가 꾸민 방은 내가 쓰던 방이 맞나 할 정도로 새로운 모습이었고 내 방은 아직까지 낯설었다. 그렇지만 새로 시작하는 기분은 확실하다. 정리를 끝낸 이 모습을 유지하고 싶은 욕심과 로망을 펼치고 싶다는 모순된 마음이 충돌한다. 어떤 모습이든 새로운 방에서 쌓일 나의 추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