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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Apr 22. 2022

숨쉬기가 이렇게 재밌다니

상상 속에선 내가 수영 천재

4월 1일, 내 생일에 수영을 시작했다. 어릴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갔던 수영장 이후 처음이다. 흔히 운동에 관해서 '몸은 기억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아니었다. 물에 뜰 일도 없었고 어쩌다 한 번씩 가는 물놀이에선 물에 뜨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물이 너무 좋더니 바다를 찾게 되고 물에 뜨게 되었다. 매 여름마다 바다를 찾았지만 1년에 하루 수영하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수영을 너무 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마음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길 1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수영을 1년 넘게 배우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헤엄을 못 치는 상태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참고 묻어뒀던 욕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이젠 코로나도 나를 막을 순 없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3일 뒤, 마음을 먹고 보니 마침 신규 수강생 접수를 받는 중이었다. 이건 운명이라며 허겁지겁 손가락이 움직였다. 자리가 없진 않을까 마음이 급한 와중에 몇 시에 등록하는 게 좋을까 고민에 빠졌다. 가급적 사람이 적었으면 좋겠어서 가장 수강생이 적고 애매한 4시 수영을 등록했다. 


그러고 수영복을 사러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갔다. 세상 화려한 수영복들 사이에 검은 바탕의 아주 무난한 디자인으로 골랐다. 그런데 리뷰를 보니 검은색은 "나, 초보자예요." 하는 색상이라고 한다. 고민에 빠졌다. 내가 초보자는 맞지만 괜한 자존심이 검은색은 아니라고 말했다. 삐약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남색에 주황색 선이 있는 수영복으로 바꿨다. 검정에서 남색으로만 바꿨을 뿐인데 상상 속 수영복을 입은 내가 쫌 멋있다.




4월 1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신청을 하고 다음 달까지는 거진 10일 남았는데 이 시간이 길고도 길었다.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게 다시 한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더디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수영을 할 거라고 자랑을 했다. 그렇게 4월 1일, 셔틀을 타고 센터에 도착했다. 센터에 들어가자마자 수영장 냄새가 났다. 락스가 섞인 듯한 물 냄새 그리고 살짝 축축한 습도까지 나를 설레게 했다. 1달간 사용할 이용권을 받고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수많이 시뮬레이션을 한만큼 아직까진 자연스러웠다. 


샤워장으로 들어가서부터는 긴장이 됐다. 언니한테 수모 쓰는 법을 물어보고 왔는데도 내 머리에 쓰질 못했다. 결국은 힘으로 머리에 씌웠다. 우여곡절 끝에 수영복까지 다 입고 수영장으로 들어섰는데 물이 가득 찬 수영장을 보니 추운 것도 잊을 만큼 설렜다. 눈치를 보며 사람이 없는 쪽 레인으로 가니, 초보는 저 끝 레인으로 가라고 호통 아닌 호통을 들었다. 얼른 자리를 옮겼다. 물 안으로 들어가니 물은 생각보다 차가웠고 사람들과는 어색했으며 나는 고장 나서 뚝딱거리는 로봇 같았다.


몸풀기로 킥판을 잡고 발차기부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호흡도 엉망이고 발차기도 엉성하지만 드디어 내가 수영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너무 신나고 벅차올랐다. 음파 음파, 어느 노래 가사 같은 호흡법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음--파-음--파, 숨쉬기도 재미있었다. 방금 알에서 깨어난 오리처럼 모든 게 다 신기했다. 한 번은 내가 수영을 한다는 게 신기해서, 한 번은 음파 음파가 웃겨서, 한 번은 발차기를 신경 쓰면서 그렇게 몇 번 왔다 갔다 하니까 벌써 끝날 시간이었다. 주말이 오지도 않았는데 월요일이 기다려졌다.




어색했던 첫날 이후 3주 차에 접어든 지금은 아주 능숙하다. 수영이 능숙하다는 게 아니라 셔틀을 타는 것부터 센터에 들어가 키를 받고 샤워를 하고 수영을 하고 다시 셔틀을 타고 집으로 오는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 사이에 수영도 킥판을 잡고 발차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유형, 물타기, 배영까지 배웠다. 완벽하게 마스터한 게 아니라 엉성하고 초보티가 나지만 그래도 이렇게 진도를 나가는 것에 대한 쾌감이 있다. 아직은 누가 봐도 수영 초보이지만 넓은 바다에 나가 자신 있게 수영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언젠가 가보고 싶은 몰디브 바다 (출처. 인천항만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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