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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다정 Apr 29. 2022

맛있을 수밖에 없는 한 끼

아버지와 함께 목란을 갔다.

맛있는 걸 먹으면 가족 생각이 나는 건 자연스럽다. 우리 가족 모두 먹는 것을 좋아하기에 맛있는 걸 먹을 때면 '이 맛있는 걸 나 혼자 먹을 순 없어!' 하는 마음이 든다. 특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언니와 동생은 외식을 할 일이 종종 있고, 맛집을 검색해서 갈 수 있지만 아버지는 생활 반경 안에서 늘 가시던 밥집만 가시는 걸 알기에 더욱 그렇다. 특히 기똥찬 한식을 먹을 때면 '이건 아버지가 좋아할 맛이다.' 하는 생각과 함께 꼭 모시고 오고 싶다는 의지가 샘솟는다.


이런 내가 1년 전부터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꼭 가고 싶은 가게가 생겼다. 기똥찬 한식집은 아니고 아주 기가 막힌 중식집이다. 바로 부산 기장에 위치한 이연복 셰프의 가게 '목란'이다. 중식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목란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니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멘보샤와 소고기 가지 덮밥, 우렁 마파두부밥을 먹었는데 멘보샤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또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른 맛있는 음식들도 나에겐 엄청난 신세계였다. 아버지께도 이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그렇게 가야지, 가야지 생각했던 곳인데 생각만큼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 4월을 끝으로 목란이 영업을 종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되는데, 아직 아버지를 모시고 못 갔는데...' 속이 탔다. 얼른 언니에게 연락했다. "언니 목란 이번 달까지만 영업이래." 마침 그날은 아버지가 집에서 점심을 드셨고 언니가 그 옆에 있었으며 내가 그 타이밍에 카톡을 하였다. 그 자리에서 바로 며칠 뒤의 평일 점심으로 시간을 맞추었다. 톱니바퀴가 맞는 것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목란을 가기로 한 날, 아버지는 딸내미들이랑 데이트를 한다고 아침에 세차까지 하고 오셨다. 차에 타보니 차 안까지 뽀송뽀송한 게 실내도 세차를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도 들뜨신 게 느껴졌다. 그런데 출발하기 전에 비가 왔다. 날씨가 오늘따라 눈치가 없었다. 비 온다는 소식을 못 봤는데 하늘이 우중충하니 하루 종일 내릴 비처럼 보였다. 기장까지 간 김에 근처를 산책하고 좋은 풍경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오늘은 못할 것 같으니 다음번에 또 가야겠다는 큰 그림을 그렸다.


기장이 멀다 멀다 했지만 차를 타고 가니 금방 도착했다. 주차장이 워낙 커서 가게를 찾기까지 조금 헤매긴 했지만 그래도 오픈 시간 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들도 영업이 종료되기 전 목란을 방문하려는 목적인지 이미 도착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게 내 좌석은 이미 꽉 찼고 급하게 웨이팅 기계에 번호를 입력하고 보니 벌써 우리 앞으로 5팀이 있었다. 30분 정도 웨이팅 하니 우리 차례가 왔다. 얼른 들어가서 미리 차에서부터 이야기한 메뉴를 주문했다. 아버지는 국물이 있는 짬뽕, 언니와 나는 소고기 가지 덮밥과 우렁 마파두부밥 그리고 당연히 멘보샤까지 주문했다.


얼마나 맛있는지 알기에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힘들었다. 먼저 나온 멘보샤를 아버지와 언니한테 권하고 나도 먹었다. 역시 맛있었다. 음식이 차례로 나오고 앞접시에 서로 음식을 덜어 먹었다. 아버지께 괜찮죠? 괜찮죠? 하고 계속 물었다. 처음에 아버지가 중식당을 간다니까 에이 안 간다 하셨기에 반응이 더욱 궁금했다. 아버지는 "맛이 괜찮네~" 하고 계속 답해주셨고 이 정도의 반응이면 아주 성공적이라는 걸 알기에 너무 만족스럽고 뿌듯했다.


우렁 마파 두부밥!


아버지의 속마음도 들을 수 있었다. 혹여나 딸들 귀찮을까 봐 어디 가자고 할 때 꼭 한 번은 거절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로 딸들이 가자는데 가야지~ 딸들이같이 먹는 건데 당연히 맛있지~ 하셨다. '아버지께 꼭 3번 물어보기'를 마음속에 적어두었다. 비 내리는 날 짧은 외출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다음번에는 또 어디를 함께 갈까, 뭐 맛있는 걸 먹으러 갈까 맛집 리스트를 뒤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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