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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Jan 22. 2017

나이 들어 공부하기

2017.1.21. 어제는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 시험을 보고 왔다.

올해 내 나이 60.

내 아이보다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인 수험장에서 책상과 의자가 함께 붙은 의자에 앉아 시험을 보다. 심지어 시험 감독관들도 나보다 어려 보였다.


비록 시험을 보기 위해서지만 오랜만에 앉아보는 대학 강의실의 의자, 칠판, 그리고 벽과 책상에 쓰인 낙서들치열한 삶 속에 밀려 희미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 그립고 반가 풍경들이었다. 소중한 풍경들이 눈 앞에 펼저 있었지만 나의 청춘 시절을 회상하며 즐길 여유는 없었다.

회사에서 입사한 지 30년이 되었다고 준 8일간의 특별 휴가와 내 연차휴가 7일, 토 일요일을 더해 만든 총 23일간의 쉬는 날을 온전히 도시락 싸들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보냈던 첫날에는 오후가 되자 앉아있는 것조차도 힘들었었다. '차라리 일을 하고 말지,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눈도 아파서 못해먹겠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남은 날들을 허송세월로 보내게 된다는 또 다른  생각으로 나를 다독였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꿋꿋이 한 공부를 시험에서 보여주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시험에 몰두하게 해 주었다. 청춘 시절을 회상할 여유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여유가 있었다면 시험문제를 푸는 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옮기느라 시험을 망쳤을지도 몰랐을터이다.


사실, 처음엔 눈 앞에 닥친 시험 때문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점심시간에 시험장 밖 복도 빈 의자에 앉아서 찬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눈은 책에 박고 있었으니까.

시험이 끝나고 감독관이 내게 일부러 다가와 "추운 날씨에 시험 보시느라 수고하셨어요."라는 깍듯한 인사에 나도 "선생님께서도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답례를 하면서야 겨우 여유를 찾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었다. 불현듯 시험이 끝났으니 강의실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시험 중간 쉬는 시간에라도 잠깐의 여유를 가져볼걸,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가장 큰 보리 이삭을 찾으러 황금색으로 물든 보리밭에 들어갔다가 빈 손으로  나온 제자 플라톤에게 소크라테스가 '바로 그것이 사랑이다.'라며 가르쳤던 것처럼, 삶의 그 순간에는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쳤다가 나중에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뒤늦음이 연속되는 것이 삶이 아니던가.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사랑하며 지내야 하는 이유다.


공부를 할 때처럼 시험을 다 보고 나니 눈이 아려왔다. 작은 글자로 인쇄된 책을 보고 공부하면서 시력이 더 나빠진 것을 느끼며,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많은 사람들처럼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지 않고 올해 대학원에 입학해서 새롭게 더 어려운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아들이 생각난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공부 좀 한다는 수재들이 모이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공부를 해야 하는, 내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수고로움을 예견하니 짠하다는 생각이 기특하다는 생각을 밀어낸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까지 공부를 하게 될까?

'내 나이 일흔이니 공부를 하기에는 해가 이미 저문 듯하다.'는 진나라 평공의 말에, '젊어서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막 떠오르는 해와 같고, 장년에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중천에 뜬 해와 같으며, 늙어서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저녁에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다, 촛불을 밝히고 가는 것이 어찌 캄캄한 길을 가는 것과 같겠느냐?'는 사광의 말을 떠올린다. 돌아가실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모습도 생각난다. 공자가 학이시습지 불역열(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나는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배우고 익히는 기쁨을 놓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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