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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Jun 10. 2017

고구마

노란 속살에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구마. 젓가락이 쑤욱 들어가는 것을 보니 고구마가 잘 익었다. 조금 있으면 하얀 속살의 하지 감자가 나올 시기에, 우리 집엔 고구마 한 솥이 삶아졌다.


퇴근길, 할아버지께서 고구마를 팔고 계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시장 끄트머리에서도 몇 걸음 더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며칠째 오가는 사람을 쳐다보기만 하셨다. 할아버지 앞에 다다르기 전 지나야 하는 시장에서 들려오는 '물건 사가라'는 아주머니들의 외침은 멀찌감치 떨어진 할아버지 자리에서도 들리건만, 정작 할아버지는  '고구마 사라'는 말씀 한 마디 없이 고구마만 펼쳐 놓으시고 계셨다. 고구마도 익숙한 듯 할아버지 앞에 말없이 쪼그리고 있었다.


오늘은 고구마를 파시는 할아버지 앞에 나도 쪼그리고 앉았다.

"할아버지, 고구마 주세요."

내가 잡은 검은 비닐봉지에 고구마를 옮겨 담는 할아버지의 손이 작은 바람에도 파르르 떠는 나뭇잎처럼 가느다랗게 떨리며 느렸다. "할아버지, 저기 사람들이 더 많이 오가는 곳에서 파시지 그러셔요."라는 내 말끝에 대답 대신 할아버지는 "고맙네" 한 마디 하셨다.

아내에게 고구마 봉지를 내밀며 나도 한 마디 했다. "퇴근길에 며칠 째 말도 없이 그냥 쪼그려 앉아만 계시는 할아버지의 고구마가 그대로인 것 같아서..."


휴일, 아내가 검정 비닐봉지 속에 쭈그리고 있던 고구마를 삶아 주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할아버지께 그냥 돈을 드리고 오더라도 철 지나 움트고 있는 고구마는 사 오지 마."

그러고 보니 접시에 수북이 담긴 고구마는 여기저기 깎인 체 노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고구마를 사 온 것을 모른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가게 앞에는 철따라 푸성귀며, 고구마며, 과일들을 팔던 사람들로 인해 사람이 지나기에도 길이 좁았다. 뉘엿뉘엿 기울다  구동 서오층석탑 끝에 걸린 해가 물건을 다 팔지 못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던 장사꾼의 얼굴을 붉게 물들일 때면, 아버지께서는 가게 앞에서 장사하시던 분들의 남은 물건을 사주셨다. 장사하시던 분들이 서둘러 아버지 가게 앞을 떠나고 나면 가게에는 신문지에 싸인 과일이며, 지푸라기에 묶인 배추와 생선이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더러는 삶은 고구마 세 개를 대나무 꼬챙이에 꿰서 팔던 것이 있기도 했다.  아버지께서는 고구마를 어린 자식들에게 먹으라고 주셨다. 꿀이 귀해 꿀맛을 알리 없던 시절이었건만 아버지께서 사주신 고구마는 꿀맛보다 더 좋았다. 이제는 아버지께서 사 주시는 고구마를 먹을 수 없다. 맛있게 고구마를 먹는 자식들을 보면서 인자하게 웃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추억할 뿐이다.


3년 전 가을 무렵에 퇴근해 집에 돌아왔다고 인사하는 내게, 어머니는 고구마튀김을  주셨다. 노인당에서 어머니 드시라고 나온 튀김을 어머니께서 드시지 않고 가져오신 것이다. 가져온 지 오래되어 차갑게 식고 굳어버린 고구마튀김이 고구마 껍질처럼 누런 종이봉투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 드시지 뭐하러 가져오셨어요?, 다음부터는 가져오시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 돌아가신 뒤 이제서야 안다. 어머니께서 노인당에서 가져와 내게 주신 차갑게 식어버린 고구마가 실은 나를 향한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이었음을...


고구마를 보며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하니, 물도 마시지 않고 급하게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뻐근해져 온다. 거리에서 고구마를 파시던 할아버지를 보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따스했던 손길처럼 고구마가 따듯하다. 어머니를 대신해 고구마를 쪄준 아내의 고마운 손길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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