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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Nov 12. 2017

아버지의 첫 기일에 올리는 헌시(獻詩)

일 년 전 오늘 밤,

아버지께서는 아직 우리 곁에 살아계셨지만,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을

병실에서 홀로이 지내시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한 달여 음식을 드시지 못하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소설가 박완서는 수필 ‘내 식의 귀향’에서

‘이 세상에 섬길 어른이 없어졌다는 건 이승에서의 가장 처량한 나이다. 만추처럼.

돌아갈 고향이 없는 쓸쓸함,

내 정수리를 지그시 눌러줄 웃어른이 없다는 허전함!‘ 이라 하였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신지 일년.

계절은 아직 단풍 고운 가을이건만

여기 모여 앉은 우리 형제자매는

처량한 나이가 되었고, 이미 추운 겨울입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가 따스한 봄날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시월의 마지막 날 새벽 꿈속에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가 더 현명했더라면 너를 더 좋게 되도록 이끌어 주었을 텐데, 그리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무슨 말씀이신가요?

살아생전 제대로 못 모신 죄인인 저에게…….

‘아니라’고, 아버지를 붙잡고 말씀드리다 잠에서 깼습니다.

잠에서 깨니, 허망했습니다.

혹시 다시 잠들면 꾸던 꿈이 이어져서

‘다시 아버지를 뵐까, 어머니도 뵐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바삐 잠을 청했지만,

눈은 말똥말똥, 생각은 창문을 넘어 끝 간 데 없이 밖으로 내달렸던 그 날 새벽에

글을 썼습니다.

----------------

제목 : 부모님 영전에     


죽음도 두려울 것 없는 나이.

의지가지없는 내게

다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아기살처럼 뽀얗고 보드랍던

어머니 손을 한 번만 더 잡아보는 것.

거칠고 앙상하시던

아버지 손을 다시 잡아보는 것…….     


고향이 별거던가?

어머니 아버지 계신 곳이 고향이지.

그 고향마저 잃고

어머니 아버지 계시던 곳을 맴돌면     


어쩌다 한 번이라도

들러주기를 바라시며

늙은 어매는

꾸덕꾸덕 고랑진 손을  모아

하늘에 비셨고,

아배는

빈 눈으로 하늘만 쳐다보셨다.     


꿈길처럼 짧기만 했던

부모 자식 인연의 끈을

부여잡은 손아귀에서

어머니 아버지 손을 놓쳐버린

가녀린 자식들은

그렁그렁 눈가에 고인 눈물만

후드득 떨군다.

ㅡㅡㅡㅡ     


아버지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날을 지나면

가을은 만추로 익어갈 것입니다.

십일월도 가고,

가을도 가고,

가을 따라 고독도 깊어갑니다.     


세월이 흐르면

우리도 가야 합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많이 그리워하고,

부모님께서 베풀어 주시던 사랑을

기억하고 살아가면,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도

외롭지 않으실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평생 바램처럼

우리 형제자매, 모두 어린 아이일 때와 같이

마음 모으고 오순도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부모님 영전에 불효자 무릎 꿇고 용서를 빌며 올립니다.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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