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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Mar 05. 2018

그리워라, 옛 골목길

광주 동구 호남동에 살던 어린 시절 내 놀이터는 골목길이었다.

언제라도 골목길에만 나가면, 동네 형이나 동생, 친구들이 있었다. 골목 흙길에 작은 구멍을 파서 친구들과 구슬치기도 하고, 길고 짧은 나무 막대 두개로 자치기를 하며 뛰어다닐 만큼 어린 시절 골목길은 넓고도 안전한 곳이었다.
작은 공이라도 하나 있는 날엔 더 신났다. 공을 가지고 나온 친구는 그날 놀이의 주인공이었다. 공주인이었던 친구의 의기양양해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가지고 놀던 공이 남의 집 담넘어로 넘어가 버려서 울상이던 모습까지…….
술래잡기를 하다가 담 그늘에 숨어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파아란 하늘에 하아얀 토끼구름이 나처럼 숨바꼭질하면서 구름 사이에 숨어 있었다.
연실을 잡고 뛰면 나풀대는 연 꼬리 아래로 동네 꼬마들이 모여들었다. 무등산보다 더 높이 날던 팽팽한 연실에선 '팅팅'소리가 골목길을 울렸었다.
중앙국민학교에서 집으로 돌아 올 때 골목길 입구에 앉아있는 개가 무서워서  개가 다른 곳으로 가기를 기다리다가, 그래도 움직이지 않으면 할 수 없이 가까운 길을 두고 개를 피해 멀리 돌아 와야 했던 길도 골목길이다.
나무판자로 담을 세운 집 앞 골목길을 지나면 굳이 나무판자에 동그랗게 뚫린 옹이구멍을 통하지 않아도 나무판자 사이로 그 집의 대강을 보며짐작할 수 있었다. 골목길은 길을 사이에 두고 이 집과 길 건너 집을 명확히 경계 짓는 선이 아니라 집과 집을 이어주는 통로였다.
   
남들은 그저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골목길이 내게 특별한 이유는 시간의 마법 때문이다. 시간이 마법을 부리면 사소한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옛 시절을 불러와 특별한 추억이 되게 한다. 남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호남동 골목길이 겐 각별하다. 아버지께서 가게를 운영하시던 상점은 3층짜리 호남동공영주차장 건물이 되어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젊은 시절 청춘이 꽃피던 곳이고, 어린 우리 형제자매들의 꿈이 피어나는 집이었는데, 사람이 사는 집 대신 차가 쉬는 공간이 되다니...,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유한한 인간의 생명만큼이나, 집도 유한하다. 다만 길이라도 그대로 있어서 다행이다. 길마저 없었으면 무엇으로 옛 흔적을 찾겠는가? 주차타워가 한 눈에 보이는 길 건너편 상점 앞에 홀로 덩그러니 서서 주차타워 건물 위로 옛날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을 그려내고 그때를 생각했다. 내 기억 속에서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 거린다. 머리속으로는 보이는 것을 눈으로는 볼 수 없다니 허망하고 아쉽다. 호남동의 골목길이 내게 특별하듯이, 동구의 다른 골목길이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장소가 될 것이다. 사람만 관계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집도, 골목길도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사람이 없어지고, 집이 없어지면 관계는 눈에 보이지 않고 머리 속 허상으로만 남는다. 그러나 허상인들 어쩌랴. 허상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감사한 것은 그리움 때문 아니련가....
   

구 주소로 호남동 16번지, 신주소 천변우로 365


몇 십 년이 흘러 내가 놀던 호남동 골목길을 가보았다. 어릴 때는 동네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고함 소리로 골목길에 활기가 넘쳤었는데, 아이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이들 대신 땅바닥에 딱딱하게  달라붙은 껌딱지마냥 납작한 차들만 줄지어 엎드린체 묵직하게 아무 소리도 없었다. 아이들이 뛰어 놀던 골목길에 새로 들어선 차는 주차된 차를 조심하느라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며, 아이들 걸음보다 더 느렸다.
차들이 다니는 골목길은 나 어릴 때처럼 안전하지가 않다. 더구나 흙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구멍하나 팔 자리도 없어져서 어렸던 시절로 되돌아가 추억을 더듬을 수가 없었다.
해질녘 골목길은 "규석아 밥 먹어라" 부르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길이다. 물론 놀기에 바쁜 나는 한 번에 손 털고 일어나 엄마한테 달려간 적이 없었다. 그냥 엄 말씀만 골목길에서 메아리 되어 엄마에게 돌아갔을 뿐이다. 지금은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서 아무리 재미있는 놀이를 할 때라도 어머니께서 밥 먹으라 부르시느라 "규석아" 소리만 들려도 엄마한테 달려갈 텐데. 지금 골목길엔 나를 불러줄 엄마도, 함께 놀 친구도 없다. 추수 끝난 빈 들판처럼 골목길만 나처럼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중앙로 149번길


 옛날 태평극장이 있던 자리 역시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태평극장 뒷 골목길이 한 때는 호남동 아버지 가게의 안집이었다. 오늘 와서 보니 태평극장 뒷길은 차 한 대도 지나갈 수 없이 좁은 길이다. 나 어렸을 때도 이렇게 좁은 길이었나?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어깨가 닿을 듯 좁은 고샅길이다. 길이 좁은만큼 반대로 이웃 간의 정(情)은 더 깊었으리라. 어쩌면 처마 끝이 서로 닿았을지도 모른다. 우리집 안방에서 앞집 아저씨의 ‘엣취~’기침 소리도 들을 수 있을만큼 가까이 산 이웃이다. 이웃 사촌이 되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었다. 지금 아파트 위 아래층간에 층간 소음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에 비하면, 낮고 좁은 집에 살았을망정 옛날이 훨씬 더 정겹지 않은가?

중앙로 148번길


중앙국민학교에 다닐 때 친구따라 간 동명동의 골목길이다. 그러나 지금 친구는 연락처조차 없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은 국민학교 때 친구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을 하면서 즐겁게 옛시절로 돌아간다는데, 한 학년에 1,000명, 전교생이 6,000명이 넘던 도시 국민학교는 국민학교 동창들 모임이 없다. 아니 어쩌면 있으나, 나만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지.... 중앙국민학교 26회 졸업생 모임이 있으려나?

동계천로 95번길

좁으면 어떻고, 넓으면 어떤가? 예전의 골목길들을 찾아 나처럼 돌아다니며, 옛날을 추억하는 것도  여행아닐까? 마음으로 떠났다가 마음으로 돌아오는 여행말이다. 누구라도 하나씩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추억의 골목길을 다시 걸어보면서 옛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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