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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Mar 26. 2016

비와 봄

잠결에 빗소리를 들은 것 같아 일어나자마자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내는 아침 6시에 회사 동료들과 마이산으로 등산을 간다고 떠났고, 덕분에 나는 일찍 일어났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등산을 하려는 아내와, 또 함께 간 동료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곳처럼 마이산에도 비가 내리고 있으려나? 많은 비만 아니라면 등산을 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내리는 비로 깨끗하게 세수 한 자연의 맑은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봄비가 오는 날은 모든 것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라 좋다. 겨울 뒤 끝에 이어진 봄비는 소리없이 내리는 겨울 눈을 닮았다. 여름 소나기처럼 부산을 떨지도 않는다. 그저 오는 듯 마는 듯 소리 없이 하늘을 적시고 땅을 적신다. 그러면서도 겨울비 달리 따뜻함을 불러온다.


봄비 속엔 많은 것들이 떠나고 돌아온다. 추위 속에서도 봄이 왔음을 알리던 꽃은 송이채로 떨어져 길 위에 나 앉아 쉬고, 풀숲에 누워서도 붉은빛을 잃지 않았던 낙엽은 하얀 눈송이를 덮고 하얀 서리를 보듬고 지내더니 흙빛으로 물들어 뿌리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청다리도요와 고니는 겨울따라 북쪽으로 북쪽으로 날다 쉬다 하고 있을 거고, 제비와 노랑할미새는 봄을 따라 숲 속 한편에 둥지를 짓고 있을 터이다.

스물 네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가곡 '겨울나그네'를 완성한 가곡의 왕 슈베르트. 곡 완성 이듬해에 세상을 떠나 그 자신 스스로 겨울 나그네가 되어 가곡 속으로 숨어든 슈베르트.

하얀 눈 위에 떨어트린 슈베르트의 넘치는 눈물은 봄을 따라 새싹으로 자라고 한 송이 들장미로 우리 곁으로 돌아 오려나? 온통 검고 하얗던 겨 세상이, 노랗고 분홍의 봄옷으로 갈아입고 봄비따라 우리 곁으로 다가오듯이….


내 눈은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아는 신체중의 하나다. 아니 봄이라기보다는 황사와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아챈다. 눈이 가렵고, 재채기를 하며 콧물이 흐른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느끼는 봄은 꽃이 피는 화려한 계절이기도 하지만 먼지와 꽃가루 때문에 괴로운 계절이기도 하다. 심지어 출퇴근과 외부에서 일을 할 때는 방독면을 쓰고 싶은 생각까지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오늘처럼 봄비가 내리는 날은 반갑다. 빗물을 마시고 더 아름다워진 꽃들과 푸르름을 더 해가며 커져가는 나뭇잎으로 치장한 자연을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 눈과 코를 괴롭히는 먼지가 빗방울 따라 꽃가루와 함께 땅으로 가라앉아서 더 이상 날 괴롭히지 못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꽃가루 때문에 혼이 나고 있으면서도 노랗게 날리던 송화가루가 그립다. 어린 시절 친구처럼 지내던 동갑내기 막내 당숙과 함께 자주 뒷동산에서 놀았다. 산을 오르면 큰 나무 사이로 우리 키만 한 나무들이 더 많았다. 물오른 소나무 가지를 흔들면 가지 끝에서 바람따라 하늘로 노랗게 날아오르던 송화가루를 따라 우리도 하늘을 날았었다.


아침 식사 후 쉬면서 창문 밖에 피어있는 꽃을 본다.  비 내리는 아침에 나뭇가지는 빗방울로 꽃단장을 하고, 추억여행을 하는 나는 빗방울로 마음 단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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