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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Feb 27. 2016

호주머니는 비우기 쉬워도 마음 비우기는 어렵다

회사에서 매년 실시하는 정기 건강검진에서 췌장암을 발견하고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는 대학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주말에 친구 병문안을 갔더니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서 나를 맞이했다.

직장에는 병가를 내고 평일에는 암환자들이 휴양한다는 편백림 숲 속 숙소에 머무르다가, 주말에는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온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씩씩하던 이야기와 건강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픈 친구가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잘 비워지지 않는다. 마음의 80%는 비웠는데 남은 20%를 비우기 어렵다."라고 했다.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마음에 대해 그동안 내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며 공부해왔던 것들을 바탕으로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했다.
"마음을 100% 다 비워야 한다는 그 생각조차 버려야 하지 않을까? 마음 비우는 게 쉬우면 세상 사람 모두 다 군자 되었다. 호주머니는 비우기 쉬워도 마음은 원래 비우기 어려운 것이다. 내 경험으론 호주머니는 많이 쓰면 비워지지만, 반대로 마음은 많이 쓰지 않아야 비워지더라. 무념무상이 번뇌를 줄이는 방법이다. 생각을 줄이면 마음이 비워지더라."라고 했다.


지금 그 친구는 우리 곁을 떠나 저 세상으로 갔다.

그 친구가 불현듯 보고 싶어 지면 마음 비우는 것에 관해 대화를 나누던 때가 생각난다.

'내가 친구에게 해 주었던 말이 친구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그래서 세상 떠날 때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났을까?, 나의 잘못된 말로 인해 오히려 마음이 무겁게 떠나지는 않았을까?' 두렵고 궁금하다.

친구가 떠나가 도착한 그곳에서 편안하게 쉬기를 기도한다.


이제 내가 친구에게 했던 말을 나 스스로에게 돌린다. '마음을 100% 다 비워야 한다는 그 생각조차 버려라!' 이 말로 오늘도 마음을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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