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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Oct 30. 2016

언제라도 나는

바람 부는 날에는

언제라도 나는 낙엽이고 싶다.

바람 부는 데로 구르다가

이름모를 나무둥치 아래 머무르면

거기서 한 점 한 점 분해되어

갈색 빛 흙이 되고

봄이 되면 다시 연녹색 여린 쌍 잎으로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싶다.     


눈이라도 오는 날에는

언제라도 나는 눈송이고 싶다.

바람따라 한 송이 한 송이 날리다가

그님 지붕 위에 내려앉으면

따스한 햇볕에 나를 녹이고

처마 가장자리에 매달린 고드름으로

그대 따뜻한 손 안에서

아이처럼 투명한 마음으로 녹아내리고 싶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조용한 날에는

언제라도 나는 닥나무이고 싶다.

내 몸 한 올 한 올 풀어헤쳐

풀과 한 몸으로 하얀 한지가 되고

조그만 앉은뱅이 책상 앞에

다소곳이 앉은 님의 붓끝에서

눈썹처럼 검게 묵향을 품은

살아나는 한 획 점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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