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에는
언제라도 나는 낙엽이고 싶다.
바람 부는 데로 구르다가
이름모를 나무둥치 아래 머무르면
거기서 한 점 한 점 분해되어
갈색 빛 흙이 되고
봄이 되면 다시 연녹색 여린 쌍 잎으로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싶다.
눈이라도 오는 날에는
언제라도 나는 눈송이고 싶다.
바람따라 한 송이 한 송이 날리다가
그님 지붕 위에 내려앉으면
따스한 햇볕에 나를 녹이고
처마 가장자리에 매달린 고드름으로
그대 따뜻한 손 안에서
아이처럼 투명한 마음으로 녹아내리고 싶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조용한 날에는
언제라도 나는 닥나무이고 싶다.
내 몸 한 올 한 올 풀어헤쳐
풀과 한 몸으로 하얀 한지가 되고
조그만 앉은뱅이 책상 앞에
다소곳이 앉은 님의 붓끝에서
눈썹처럼 검게 묵향을 품은
살아나는 한 획 점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