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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Sep 04. 2016

아버지!

서창들녘에서 밀려온 저녁 놀이 시내를 건너와 누렇게 뜬 손으로 창문을 겨우겨우 힘겹게 두드린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아버지께서는 부쩍 힘이 빠지셨다. 서창들녘에서 떠밀려 온 노을보다 더 기력이 없으신 모습이다.
8월 초에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중순에 퇴원하셨는데, 9월의 셋째 날 또 응급실에 들어와 있다.
너그럽고 지혜로우시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시던 꿋꿋한 어른이셨다. 그러나 병상에 힘없이 누우신 지금은 기다리시기보다는 조급하게 재촉하시며, 짜증내시고, 느끼시는 것을 즉시 표현하신다. 어찌 아니 그러시겠는가? 본인 스스로의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힘이 드시니 당연하다. 강건(剛蹇)하시던 모습에서 약한 석양의 그림자를 뵈오니 더더욱 애잔해진다.


병상에 누우 셔서도 곁에서 밤을 지새우는 아들을 걱정하신다. 좀 자라고, 나가서 쉬라고, 집에

가라고…, 여러 번의 말씀 끝에 속없는 아들은 병상 옆 앉은뱅이 불편한 의자에서 거리가 좀 떨어진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으니 금세 찾으신다. 자식을 사랑하시는 생각과 아프신 몸의 부조화 탓이다.


두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응급실에 입원해서 밤새 운다. '엄마, 엄마~ 아파'하고 울더니 나중엔 '아빠…'도 찾는다. 그저 보듬고 쓰다듬어 줄 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엄마도 함께 운다. 아빠 되는 이는 그나마 울 수도 없는지 눈만 무겁게 깜박거린다. 어린아이에게 세상의 전부가 엄마이듯이, 엄마에게 아이는 세상의 전부라는 것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아버지의 말 없는 가족 사랑도 가슴을 파고든다.
아버지께 "저도 어렸을 때 저렇게 아파하며 운 적이 많았었죠?" 하고 여쭈었더니, "아니다, 설사 때문에 아팠던 것 한  번뿐이다."라고 하신다. 내가 기억하기에도 아팠던 때가 많았으나, 병든 자식 챙기시며 힘들었던 것을 당연하게 여기시고 의식하시지 않으시기에 잊으신 거다. 힘들게 일하시는 한편으로 어린 자식들을  밤새 보살피시던 부모님께서는 울다 지쳐 잠든 내 얼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나는 지쳐 잠이 드신 주름 가득한 얼굴을 뵈오며 젊으셨던 아버지와 함께했던 때를 추억하는데….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이 있었으니 아픈 자식 챙겨야 하는 때도 많으셔서 힘드셨을 터이다. 병원에서 부모님의 노고를 돌이켜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 본다.
이제 아버지께서 아프시다. 부모님의 보살핌을 갚을 기회다. 기회를 주신 것은 감사하나, 편찮으신 모습을 뵈오니 이런 기회는 안 주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엄마~'하고 울부짖는 아이가 빨리 낫기를 바라다가 불현듯 부럽다.
'너는 좋겠다. 엄마가 있어서….'

또 다른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우리 곁엔 아직 아버지께서 살아계시지 않은가….'


먼저 가신 어머니께 부탁의 기도를 드린다.
"어머니, 하늘에서 아버지 없이 외로우시더라도 지금은 아버지 데려가지 마세요. 조금 더 우리 곁에 머무르시다 가게 해주세요…, 아버지 빨리 낫게 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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