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불안과 자신감, 승리와 황폐함이 동시에 겹쳐 보이는 동전
•20 코페이카, 소련 루블의 보조 단위(1루블 = 100코페이카)
•재질·규격: 구리-니켈 합금, 중량 약 3.6g, 지름 약 21.8mm, 톱니무늬(밀링) 테두리.
팔각형 안에 액면과 “КОП” 표기되어 있다.
주변을 밀 이삭과 잎 장식이 둘러싸고 아래에 1945 연도가 적혀 있다.
농업과 생산, 전후 재건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담긴 디자인이다.
뒷면에는 소련 국가 문장이 크게 들어가는데, 지구 위에 망치와 낫, 그 둘을 둘러싼 밀 이삭, 위쪽의 별, 아래쪽 “СССР” 글자가 한 덩어리로 보인다. 다시 말해, 이 동전은 “여기엔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이념만 있다”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는 상징물이었다.
1945년 소련
1945년은 소련이 전쟁에서 이긴 해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상처를 받은 해였다.
독일을 이기기는 했지만, 수천만 명이 죽거나 다쳤고 공장·철도·농촌이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경제는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모든 것을 정하는 계획경제였고, 물건을 돈으로 사기보다 배급표에 의존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찍힌 것이 이 20코페이카 동전이라, 실제 구매력보다는 “우리 체제는 아직 돌아가고 있다”라는 상징성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스탈린의 권력이 가장 강하던 시기였다. 전쟁 승리 덕분에 스탈린 개인숭배가 더 심해졌고, 당과 비밀경찰이 사회 전반을 꽉 조이는 분위기가 다시 굳어졌다.
전쟁 중에 조금 느슨해졌던 검열과 통제가 다시 강화되면서, 다른 생각을 드러내면 쉽게 “반소련적이다”라는 낙인이 찍히곤 했다. 전선에서 돌아온 포로들, 점령지에 살았던 사람들은 의심의 눈으로 보이며 조사와 감시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동전 뒷면의 커다란 국가 문장은 이렇게 강한 국가 중심, 체제 중심의 분위기를 그대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이미지였다.
대외적으로 1945년 소련은 “파시즘을 무너뜨린 영웅”이면서 동시에 “동유럽을 장악한 새로운 강국”이었다. 붉은 군대는 폴란드, 헝가리, 동독 등 동유럽 여러 나라에 들어가 나치를 몰아냈고, 그 자리에 친소 공산 정권을 하나씩 세워 갔다.
2월 얄타 회담과 7~8월 포츠담 회담에서 소련은 미국·영국과 함께 독일 분할, 전후 유럽 질서를 협의했지만,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도 빠르게 자랐다. 소련은 다시는 침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완충 지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서방은 이것을 공산주의 팽창으로 받아들였다.
또 1945년 8월 9일 일본 제국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을 침공했다.
이 전쟁을 통해 소련과 몽골 인민공화국은 만주국, 몽강연합자치정부, 한반도 북부, 가라후토청, 그리고 지시마 열도에서 일본의 통치를 종식시켰다.
소련-일본 전쟁의 결과는 동아시아 전체, 그리고 향후 동아시아에서 벌어질 냉전에 영향을 미쳤다. 이 전쟁의 결과로 외몽골과 내몽골은 완전히 분리되었고,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분단되었으며, 소련이 중화민국에 반환하기로 한 만주 지역은 제2차 국공 내전의 주요 전장이 되었다. 소련이 이 전쟁에서 강제 병합한 쿠릴 열도는 여전히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 분쟁 지역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1945년은 냉전 확산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이렇게 보면, 20코페이카 동전은 전쟁의 상처 속에서도 살아남은 국가, 강한 지도자와 계획경제, 그리고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사회주의 이념을 한꺼번에 보여 주는 작은 조각이다.
손바닥 위에 올려 보면, 숫자 20과 작은 문장 속에 1945년 소련의 불안과 자신감, 승리와 황폐함이 동시에 겹쳐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