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날의 기억들
내가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작은 단독주택에 살았다. 아주 좁은 골목길에는 색색깔의 대문들이 있었는데, 그 중 안에서 아무리 꼭 잠궈두어도 발로 요령껏 아랫쪽을 눌러 밀면 잠금이 풀려버리는 초록색 대문이 우리집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닥이 시멘트로 발려진 작은 마당이 있었다.
7살 아이였던 내 걸음으로 일곱 걸음쯤 걸어 들어가면 왼쪽엔 겨울에도 차가운 물만 나오는 수돗가가 있었고, 거기서 다섯 걸음쯤 더 걸어 들어가면 오른쪽엔 방으로 들어가는 마루가 있었다. 마당 맞은편에는 폭이 50cm, 길이가 1m 쯤 되는 작은 화단이 있었는데, 우리는 거기에 다 먹고 남은 과일 씨앗이나, 봉투로 파는 500원 짜리 식물 씨앗을 심곤 했다. 가끔 새싹이 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개방된 옥상을 통해 들어온 길고양이가 망쳐 놓았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그 화단을 좋아했다. 엄마는 우리의 사진을 찍을 때 항상 화단 앞에 서라고 했다. 화단 배경이 마당 중 가장 예쁘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한 번은 먹고 남은 감 씨앗을 심었다. 새싹이 되어 자라더니 꽤 무럭무럭 자랐다. 어느새 내 키를 넘더니 우리 집 지붕보다도 커졌다. 영양이 부족했는지 줄기는 아주 가늘었다. 그래도 '나무'라는 것이 우리 집에 있어서 좋았다. 감나무는 무언가 집에 갖고 있기엔 크고, 대단하고, 유용한(것 처럼 느껴지는) 존재니까.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엄마랑 아빠는 뛸 듯이 좋아했다. 한편 나는 엄마랑 같이 감나무 걱정을 했다.
"감이 열리는 걸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참 잘 자라고 있는 감나무를 버리고 가는 것 같은 미안함, 아쉬움, 섭섭함. 엄마는 다음에 이사오는 사람이 감나무를 잘 키워주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그 당시의 나는 이사오는 사람도 감나무의 소중함을 알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그 감나무는 열매를 맺었을까? 그랬다면 좋겠다.
그 집은 아주 납작했지만 우리 집 감나무는 지붕보다 더 높이 자랐고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때 그 마당의 햇살들. 어쩌면 그 햇살이 있었기에, 내가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엄마께 글을 공유해 드렸더니... ㅎㅎ
*커버 사진 출처 :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