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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케 Oct 28. 2022

쉬운 사랑과 어려운 사랑

엄마와 아빠가 내게 줬던 어려운 사랑을 택하며 

우리집은 내가 어릴 때 부터 강아지를 키웠다. 순심이, 아롱이, 바람이와 설이, 그리고 지금의 방울이까지. 강아지를 돌보는 일에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강아지 한 마리 돌보는 일을 네 가족이 분담해서 하긴 했지만, 어쨌든 쇼미더머니도 시즌 10까지 보다보면 괜시리 나도 예선 정도는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고. 뭐 그런 마음 아니겠는가. 


결혼과 동시에 첫 독립을 했다. 엄마 아빠를 떠나 사는 건 처음이었다. 남편과 함께 하는 독립 생활에 강아지는 없었다. 내 인생의 첫 강아지 공백시기였다. 나를 위로해 주던 작고 뽀송하고 귀여운 존재가 그리웠다.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가면 산책하는 강아지를 집착하듯 쳐다보기도 하고, 이젠 엄마네 강아지가 되어버린 방울이를 우리집에 일주일씩 데려와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유기견 임시보호를 해 주지 않겠냐는 요청을 받았다. 그때의 나는 이유 모를 삶의 공허함 때문에 무언가를 하염없이 돌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얘길 들은 엄마는 반대했다. 첫째, 정 들면 입양 보내기 힘들 것이고, 둘째,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 생각보다 손 가는 일이 많아서 피곤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응, 알겠어. 참고할게." 하고 강아지를 데려왔다. 


강아지의 이름은 흰둥이었다. 제 이름처럼 하얀 강아지. 보호소에서 다른 강아지들에게 치여 지내, 가정보호가 필요해 보여 우리집으로 보내진 딱한 아이였다. 나는 엄마네 강아지 방울이와 보냈던 일주일을 기억하며 잘 돌봐주고 함께 열심히 놀아주면서 좋은 곳으로 입양 갈 수 있게 예쁘게 사진도 찍어줘야지, 정도를 다짐했다.  


하지만 흰둥이는 방울이와 너무 달랐다. 사랑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느긋하고 조용한 방울이와 달리, 보호소 생활을 하다가 또 새로운 환경으로 온 흰둥이는 상시로 사람의 관심을 갈구했다. 배변 교육도 쉽게 되지 않아서 집 구석구석에 오줌을 누기도 했다. 그 중 예상치 못했던 가장 큰 난관은, 흰둥이의 분리불안 증상이었다.


나와 남편은 맞벌이 중이었고 재택근무 일정도 불규칙했다. 하필이면 흰둥이를 데려온 초반에 둘 다 내내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혹시나 몰라서 설치한 홈캠을 확인해 보니 집을 비운 내내 흰둥이가 혼자 하울링을 하며 울고 있었다.      


결국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연차를 쓰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한참 밝은 아침 시간, 회사에서 집을 향하는 낯선 분위기의 택시 안에서 오만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되돌려 보낼까? 맞벌이하는 집이라 분리불안이 있으면 보호하기 힘들다고 하면 되잖아. 그래. 이해해 주실 거야. 그런데 그러면 흰둥이는 짧은 시간에 대체 환경이 몇 번이나 바뀌는 거지? 우리 집에 온 것도 보호소에 적응이 힘들어서 온 건데. 그럴 거면 애초에 보호소에서 데려오지 마는 게 더 나은 선택 아니었을까? 데려왔다가 다시 되돌려 보내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아?'


일말의 책임감이었을까. 나는 흰둥이를 되돌려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분리불안 극복 훈련법을 검색했다. 출근 전 새벽에 산책을 시키라던가, 켄넬에 들어가 있도록 교육을 해 보라던가, 집에 왔을 때 너무 반가워해 주지 말라던가(남편은 특히 이 훈련을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어했다) 하는 조언들.     


흰둥이를 돌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누군가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전히 책임지며 사랑을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방울이에게 주었던 사랑이 쉬웠던 이유도 그 때 깨달았다. 방울이의 주 양육자인 부모님이 초반에 어려운 과정들은 모두 극복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남은 건 그저 방울이를 예뻐해주고, 귀여워해주는 즐거운 일들 뿐이었기에.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도 어떻게 보면 크게 다르지 않겠다 생각했다. 육아란 아이의 예쁜 모습만 보고 쉽게 마음 먹을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흰둥이를 돌보는 일보다 1억배 정도 힘든 일을, 최소한 20년은 매일매일 해야 한다. 사랑한다고 예뻐만 해서도 안되고, 사랑해서 모질어져야 하는 어려운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결국 흰둥이에게 줘야 하는 것이 믿음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느낀 벅참, 아니 그 이상의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흰둥이는 훈련 끝에 결국 분리불안을 고쳤다. 그 후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다가, 내가 찍어 올린 흰둥이 사진을 보고 멀리 평택에서 온 가족이 흰둥이를 입양해갔다. 여러 가족 중 흰둥이와 함께하는 산책 면접을 통해 고심해서 선정한 가족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대가족이라 흰둥이가 혼자 있을 틈이 없는 복작복작한 가족이라는 점이 가장 좋았다. 보내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내가 흰둥이의 행복을 찾아준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도 해보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했던 쉬운 사랑 말고 어려운 사랑을. 나의 엄마와 아빠는 어쩌면 아직까지도 하고 있는 것 같은 그 혹독한 과정을. 너무나 힘들겠지만, 또 그 과정은 아주 아름다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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