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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케 Oct 27. 2022

모성애란 뭘까?

아름다운 드라마 같진 않을지라도

"이거 관리 제대로 안 하면 금방 망가져. 수첩에 붙여두던가 앨범에 넣어둬야 할 걸?" 내 산모수첩 속 초음파 사진들을 보더니 친구가 던진 한 마디. 그도 그럴 것이, 매 검진에서 받은 초음파 사진이 쌓여 가는데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산모수첩 맨 뒤 포켓에 순서 없이 뭉텅이로 꽂아 두기만 했다. 잘못 건드리면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이, 순서도 없이 무심히 꽂혀 있는 사진들이 마치 뒤죽박죽 복잡한 내 마음 같았다. 


남편과 나 둘 다 바라 왔던 임신이었다. 신혼 3년 차쯤 둘 다 마음을 굳히고, 급할 것 없다며 일 년 정도를 느긋하게 기다렸다. 중간에 또래 친구들이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축하하면서도 내심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아기가 생긴 것을 확인한 순간, 나를 포함한 우리의 반응은 상상하던 것과 조금 달랐다. 


일단 나부터가 그저 놀랐다. 더 생각할 틈도 없이 임신테스트기를 그대로 들고 남편에게 달려갔다. "오빠...! 이거.. 이거 봐...!" 남편도 그저 놀랐다. "어어어어...? 어어? 어!!" 둘 다 눈이 동그래져서 일단 서로를 끌어안았지만 벅찬 눈물이나 서로를 북돋는 아름다운 말 같은 건 그다지 없었다. 내 머릿속이 그랬듯, 남편의 머리도 그저 놀라움과 복잡함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티브이나 소설에서 드라마틱하고 화려하게(아기야 우리에게 온 걸 환영해! - 예쁜 케이크를 들고 축하하며), 혹은 담백하지만 아름답게 그려졌던(서로를 마주 보는 우리 둘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임신 확인 이벤트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내 성격이 워낙에도 무던했으면 또 모를까. 나는 평소 인생의 모든 이벤트를 굉장히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유난쟁이라는 뜻이다), 그 추억을 놓치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열심히 기록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무던한 모습에 더욱 놀랐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병원에서 아기집을 확인하고, 젤리곰같이 귀엽게 큰 아기의 모습을 보고(사실 이때까지도 초음파로 아기 모습을 판별하기 힘들었다), 또 어느덧 사람 같은 얼굴을 갖춰가는 아기를 초음파로 지켜봐도 생각보다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았다. 그저 '와... 신기하다.' 정도. 그러다 무슨 정보를 찾으려고 임산부 블로그 포스팅을 검색하다 보면 대부분 이런 말이 한가득 쓰여 있는 것이다. "초음파 사진만 봐도 귀엽다.(나는 어디가 얼굴인지 구분도 잘 못 하겠는데...)" "우리 OO이가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줘서 그저 고맙다.(나는 아직 내 몸이 힘든 게 더 우선인데...)" "저번엔 n센티였는데 벌써 n센티나 컸다고 한다. 기특하다.(저번에 몇 센티라고 한 걸 어떻게 기억하시지..?)" 


이런 일도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남편이 "역시 엄마는 대단해~ 너도 벌써 엄마가 다 되었네."라는 뉘앙스의 말을 내게 했다. 사실 언뜻 들으면 무슨 문제인가 싶고, 오히려 본인은 나를 칭찬하려는 의도였겠지만 그 말이 순간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 아직 엄마가 뭔지도 모르겠고,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대단하게 굴 마음도 없는데...'라는 마음이 GD보다 더 삐딱하게 튀어나왔다. 한편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모성애가... 없는 걸까?'


솔직히 말해보겠다. 나는 결국 내 인생의 더 큰 행복을 위해 아기를 갖고 싶었다. 다만 그 행복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감수할 준비를 단단히 했을 뿐이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기가 태어나고, 내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부모의 세계를 겪으며 느낄 새로운 감정들에 호기심이 들었다. 엄마와 아빠가 내게 준 큰 사랑을 나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감정들 사이에 아직 모성애는 자리잡지 않았다.


나는 태어날 아기를 무척이나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아기가 생겼다고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아! 그저 마음의 공간을 (아마도 가장 큰 공간이겠지만) 나누어 줄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고 생각한다. 내가 벌써부터 너무 방어적인 걸까?


물론 이 모든 생각은 아기가 태어난 후 깡그리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후의 나는 어떻게 변할까. 아니면 얼마나 그대로일까. 내 부모님이 내게 주신 사랑을 얼마나 나눠줄 수 있을까. 멋진 엄마가 될까, 아니면 지긋지긋한 엄마가 될까. 


일단은 잘해보려는 마음만으로 충분할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초음파 사진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내 마음도 그러길 바라며, 산모수첩에 한 장 한 장 가지런히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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