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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Aug 28. 2022

어린 시절의 기억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기 8

나는 전주에서 태어나서 정읍에 살다가 다시 전주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두번째 전주에서 살던 집이 잘 생각나고 이후에 살던 동네에서도 어린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전주에서 살던 단층집이 더 생각나는 게 많은 건 왜냐... 

전주에서 5월에 올라오기 전까지 3월부터 두 달 동안 유치원에 다녔다. 유치원 안에서 뭘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고, 유치원 가는 길을 항상 헤맸던 기억, 오전 오후반을 헷갈려서 간 기억이 난다. 갈래길에서 여길 들어갔다가 아닌 것 같아서 또 나왔다가 몇 번 했던 것 같고 유치원에 못 간 기억은 없으니까 항상 길을 찾았나 보다. 유치원은 낯설고 유치원 친구들은 다 타인들 같았다. 내가 이사를 간다고 했던 날 선생님이 따뜻하게 토닥여준 것만 기억난다. 

재래식 화장실, 난방이 안 돼서 차가웠던 마루와 보일러실이 뭐가 이상했던지 이모가 보일러를 보고 '아이고 아버지' 하던거, 같이 살던 산악인 삼촌이 다리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집에 온 것과 엄마가 그 빨래를 매우 싫어했던 표정. 임신한 엄마가 아빠랑 벽지를 바르다가 재봉틀에서 떨어져서 기절한 것, 재래식 화장실에서 윗옷 주머니에 넣어둔  반으로 접는 칼을 빠트린 것, 사촌오빠가 옥상에 있던 구멍 벽돌의 벌집을 건드려서 벌에 쏘이고 엄마가 된장을 바른 것, 셋방에 살던 젊은 부인과 툇마루에 앉아 이야기한 것, 눈 오는 날 옥상에 올라갔는데 내 무릎까지 눈이 쌓인 것(확실치는 않다), 마당에 있던 무화과 나무에서 아빠가 무화과를 따서 반으로 갈라준 것, 석류를 따먹던 것, 마당에 호박 덩굴이 무성하게 자란 것, 처음으로 원피스의 허리 리본을 묶었을 때 기뻤던 것, 엄마가 사준 365일 전집의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고 책장을 넘기며 그림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것, 셋째 동생을 낳은 엄마가 아기를 안고 집으로 오던 것. 몰래 동전을 들고 나가서 소세지를 사먹었다가 뒤지게 혼난 것, 마당에 있던 네모 벽돌이 대각선으로 놓여 있고  그 사이사이로 작은 노란 꽃이 피는 풀이 자라던 것, 그 풀을 씹으면 새콤한 맛이 났던 것, 집 앞의 작은 개울과 그 개울을 잇는 작은 다리 너머에 옹기종기 붙은 작은 집들, 동네 아이들과 골목길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산에 올라갔다가 본 호랑이 할머니의 뒷모습. 호랑이 할머니는 우리가 안 볼 때 호랑이로 변하기 때문에 나는 그곳에 올라가는 걸 무척 싫어했다.

뒷집에 어떤 언니가 살았는데 나랑 같이 잘 놀아주었다. 그 언니가 방에 개놓은 이불에 사과를 슥슥 닦아 먹으라고 줬던 거, 새우깡을 맛있게 먹고 새우깡 가루를 손가락으로 다 찍어 먹은 다음 새우깡 봉지에 수돗물을 담아서 단물까지 마신 것은 특히 즐겁게 기억난다. 난 지금도 새우깡을 좋아한다. 여태까지 먹은 새우깡이 만 개는 될 듯. 그 옆에는 선녀라는 친구가 살았다. 이름이 어떻게 선녀인지 항상 신기했다. 선녀는 좀 새침해서 나랑 친하지 않았다. 그 언니가 제일 좋았다. '아버지는 나귀 나고 장에 가시고 어머니는 ... 어쩌고' 이런 노래가 있었는데. 그때 그 노래를 많이 불렀던 것 같다.

한 2년 전쯤 전주에 한 번 갔었다. 할아버지가 내 호적에 생일을 잘못 올려서 고치기 위해서는 태어난 곳의 주민센터에 가서 무슨 서류를 받아와야 한다고 해서 갔다. 내가 태어난 동네니까 그 집이 있던 동네겠지만,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집집마다 석류가 주렁주렁 열린 석류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옛날 생각이 났다. 요즘 지방 도시들이 그렇듯, 내가 살던 동네는 옛날 동네 모양을 하고 있고, 그 전에는 도시가 아니었던 곳으로 도시가 넓어져 아파트도 많고 여느 신도시처럼 생겼다. 나도 이쪽 어딘가에 있는 쇼핑몰에 들어가서 영화를 봤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한옥마을이고 뭐고 돌아다닐 수가 없어서... 

그집은 아주 추웠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와서 이렇게 추운 데서 어떻게 사냐고 했을 정도로. 그러자 내가 할머니에게 시원해서 좋다고 했다고 한다. 하하. 추웠던 기억은 전혀 안 난다. 어린애들은 추위를 모르나? 

엄마는 단독 주택이 너무 싫다고 했지만 나는 이집이 항상 그리웠다. 좋은 기억이 많다. 이후에도 단독주택에 1년 정도 산 일이 있는데 그집은 귀뚜라미가 많고 뭔가 팍팍했다. 지금도 귀뚜라미는 열심히 울고 있지만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데 그집 귀뚜라미들은 왜 그렇게  기꺼이 자신들을 드러냈는지 모르겠다. 귀뚜라미가 신발에서 튀어나올 땐 정말 공포스러워서 신발 신을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통통하고 시커먼 몸통이 곤죽이 돼서 내 발에 묻고 길쭉한 다리까지 그 옆에 너덜거리면.... 상상만 해도 감당이 안 돼서 해가 어두워지면  항상 신발을 잘 보고 신었다. 

집들이를 했는지 아빠 동료들이 와서 술병이 아주 많이 나왔다. 학교에서 폐병이나 폐휴지 가져오라고 해서 마침 그 병을 한 자루 들고 가서 칭찬을 엄청나게 받았는데, 그 이후로는 병이 없어서 못 가져갔더니 계속 그때처럼 가져오라고 해서 얼마나 곤란했는지 모른다. 매일 폐병 더 가져와라, 폐휴지 더 가져와라, 하던 그런 학교. 지금 생각하면 정상이 아니다. 


...


내 어린시절은 나만의 기억이라 더없이 소중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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