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학원에서 단어 시험을 봤다. 사실 지난달 일한 지 몇 주만에 원장님이 한달에 한 번씩 단어 대회를 한 번 열어보라고 해서 나한테 왜 이러시나 했다. 전에 있던 강사는 하지 않던 걸 왜 자꾸 시킬까... 하지만 하라니 안 할 수도 없고... 단어 시험 계획하는데도 몇날 마음 고생을 해야했다. 아이들이 외우는 단어가 다 제각각인데 단어 시험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도 모르겠고 애들이 다 맞으면 누굴 일등으로 해야 할지도 어려울 것 같고 정말 고민 됐었다. 그러다가 범위를 정하고 고심 끝에 같은 점수라면 제일 빨리 푼 친구를 빠른 등수로 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시험을 보니 점수가 형편없었다. 그래서 시간을 재는 의미가 없을 지경으로 등수를 정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원장님이 며칠 후에 단어를 좀 더 잘 외울 수 있게 해보라는 말을 돌려하셨다. 그래서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가끔 한번씩 앞에 외운 단어를 물어보기도 하고 시험을 다시 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실력을 체크해봤다. 그리고 2주 전에 단어 시험 일정을 공지하고 공지문을 붙인 후 그림 잘 그리는 친구에게 그림을 하나 그려달라고 했더니 색연필로 아이스크림 그림을 기똥차게 그려줬다. 얼마나 예쁜지. 지나가는 아이들이 다 누가 그렸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렇게 어제 단어 시험을 치렀다. 같이 몰려다니는 친구들끼리 경쟁심에 불타서 열기가 아주 뜨거웠다. 한 친구가 95점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는데 그 다음에 같은 점수에 시간도 더 빠른 친구가 나타났다. 항상 공부하기 싫다고 불평과 한숨으로 나를 힘들게 하던 친구였는데 전날 밤 죽어라 단어를 외웠다고 한다. 그리고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물론 내 기분도 좋았다. 하지만 앞으로 더 시험 볼 친구들 있으니까 아직 모른다고 하니 카톡으로 자기 등수 좀 알려달랜다. 결국 그 친구는 2등을 했다. 더 빨리 본 친구가 나타나서리..... 평상시 단어 시험을 반 이상 틀리고 자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멍만 때리던 친구인데 무슨 일이 생긴건지. 하나 빼고 답을 싹 적었다. blackboard라는 단어는 참 어려운가보다. 아무도 못 맞춤. 그 단어만 맞췄으면 100점이 속출했을 듯.
시험 문제 내는 사람 입장으로 아이들이 다 백점 맞아도 문제, 다 틀려도 문제인 것 같다. 그래도 아이들이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좀 먹은 것 같아서 참 고맙게 생각됐고 원장님도 단어시험 성공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나도 뿌듯했다. 처음에는 두 달 못 채우고 그만둘 것 같았고 나는 역시 아이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물렁이라는 생각에 좌절할 뻔했는데 이렇게 바뀌어서 신기하고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