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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Jan 09. 2022

나를 아는 것에 대해

 나를 안다는 게 뭘까? 지인 한 명이 나를 알기 위한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연다. 아내, 엄마, 딸에 갇혀 자신을 잃어버린 여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의 호응도 좋아서 많이 울고 털어버리면서 치유해나가는 것 같다. 나는 왜 잃어버리고 나를 찾는 건 어떤 걸까?      

 

 우선 나도 딸이고 아내고 엄마다. 하지만 딱히 나를 딸, 아내, 엄마로 규정하며 살진 않았다. 다행히 여자니까 이렇게 살아라, 라는 강요도 없었다. 그냥 나로 살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만족스럽게 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점점 나이 들면서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고 그렇게 성공하지 않고 남들보다 풍족하지 않아도 부끄럽거나 괴로운 일이 아니라는 건 배웠다.      

 

 물론 나를 그런 역할로 규정하는 시선을 느낄 때는 굉장히 괴로웠다. 학창 시절에는 살쪘다는 잔소리, 나중에는 취직하라, 결혼하라는 잔소리들이 다 나를 일정한 규격에 맞추려는 시선이었던 것 같다. 또 아이가 안 생겨 괴로울 때 나만 보면 아기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를 나로 보지 않고 ‘아기 생산 준비 기계’로 보나... 하는 생각에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한 후 딸과 아들을 낳은 후에는 이제 나를 들볶을 사람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 참 안심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판단질을 멈추지 않는다! 아무거나 끄집어내서 자기 입맛대로 재단한 후 비난 내지 동정한다. 그런 폭력에서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그런 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다 보면 나를 잃어버리게 될까? 끝없이 남의 기준에만 맞춰서 살려고 하면 당연히 나를 찾고 싶을 것이다. 노예처럼 열심히 일하고 월급은 모두 남에게 준다면 누구든 억울해서 제 명에 못 살 것이다. 그런 게 나를 찾고 싶은 마음일 수 있겠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40을 훨씬 넘어버려서인지, 아니면 사회가 점점 변하면서 정형화된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게 예전보다 쉬워져서인지 그런 남의 시선이나 강요에 갇혀 살지는 않는다. 점점 단순하게 먹고 살기, 내 일 하기, 아이들 잘 키우기, 하루하루 잘 보내기 이런 게 중요해진다.      

 

 그리고 원불교에서는(나는 원불교 신자다), 불교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버리라고 하고 ‘자아’라는 틀에 갇히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나도 내 성격, 기질이라는 틀, 또는 체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란 생각도 든다. 인간의 본성, 또는 우주를 통하는 상식은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과는 그다지 상관없을 것이다. 사랑, 자비, 믿음, 희망 이런 가치는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거니까. 그래서 요즘 나를 찾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좀 구식 같기도 하고 뭔가 허상에 빠져있는 생각 같기도 하다.     

 

 아마도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하면 남들이 알아주고 그럼 내가 짠! 하고 돋보일 거란 기대 속에 그렇게 자신을 버리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나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나를 남의 손에 맡기고 대신 찾아달라고 한 격이다. 남들에게 주목받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아니면 단지 가장의 학대 때문에 살기 위해 복종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학대자가 사라졌는데도 내재화된 가부장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속히 그 틀을 인식하고 벗어나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부처님도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했다. 세상을 살고 보고 경험하는 사람은 나니까, 내가 없으면 이 세상도 의미 없다. 그러니 나는 참 중요하다. 하지만 나를 붙잡고 세상에 나를 강요하면 내가 더 힘들어진다. 나를 잘 살리고 또 버려야 한다. 이런 게 모순적인 거 같지만 또 모순이 아니다. 너무 한 쪽만 생각하면 틀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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