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독서 모임 읽을거리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20대 초반에 읽었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꽤 음침했던 소설로 기억하는데, 거의 30대 중반이 되어 다시 읽은 소설은 한층 더 어두운 얼굴로 다가왔다. 주인공 요조가 매우 한심하면서도, 한편으론 왠지 모를 동질감이 묘하게 느껴졌다. 나는 소설을 더 깊게 이해하고자 검색을 하던 중 일본 만화가 ‘이토 준지’가 이 작품을 원작으로 만화를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고민 없이 구매해서 함께 읽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작품에 대한 해체보다는, 원작과 만화를 비교하며 느낀 가벼운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삽화 하나 없이 활자로 가득한 원작의 장점은 글을 읽는 ‘독자의 무한한 상상’에 있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간을 이해하지 못해서 평생 고뇌하는 요조. 인간사회에 속하기 위해 ‘익살’이라는 가면을 쓰고 비극적인 학창 시절을 보낸 요조. 사랑하는 연인 쓰네코와 동반자살을 시도하지만 혼자 살아남고,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을 망치는 것이 두려워 도망치고,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겁탈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한심하고도 한심한 요조. 술과 마약에 절어 생을 마감한 인간. ‘비참함’ 그 자체인 인간. 그 인간을 주인공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한다면, 도대체 그 배역은 어떤 배우가 소화할 수 있을까. 내 머릿속에는 ‘유아인’이라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가 떠올랐다.
<베테랑(2015)>에서 안하무인 조태오를 연기한 유아인은, <사도(2015)>에서는 예술과 무예가 뛰어나지만,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사도세자로 환생한다. 그는 스크린에서 넷플릭스로 넘어가더니 <지옥(2021)>에서는 신흥 종교의 수장 정진수로 재림한다. 이렇듯 다양한 얼굴을 가진 유아인이 ‘오바 요조’를 연기한다면 그 배역의 불안과 비극의 맛을 얼마나 맛있게 살릴 수 있을까. 이런 상상은 독자로서가 아니라 마치 영화나 드라마 작가로서 배우를 캐스팅하는 상상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움이 있다.
이제 만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토 준지는 ‘공포 만화가’로 유명하다. 그가 그린 『인간 실격』은 원작보다 더 기분이 나빴다. 어쩌면 이런 감상평이 이토 준지에게는 칭찬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만큼 인물의 묘사가 그로테스크하고 어둡다. 각색된 시놉시스 역시 원작보다 주인공 요조를 훨씬 더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들었다. 만화가 원작보다 좋았던 점은 아무래도 활자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금방 읽을 수 있다는 점, 만화가의 상상력이 예술로 승화되어 하나하나의 미술작품을 보고 있는 느낌을 준다는 점, 원작과 어떤 내용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는 점이었다.
문학작품은 소설로 읽을 때 원작 특유의 클래식한 맛이 있다. 하지만 하나의 작품이 다양한 콘텐츠로 재해석되면서 그 작품은 다시점으로 재평가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 실격』은 만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독자 개개인의 선호에 따라 관련된 작품을 찾아보는 일은 좀 더 능동적인 독자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 참고문헌
다자이 오사무(1948), 김춘미(역)(2004), 『인간 실격』, ㈜민음사
이토 준지(2020), 오경화(역), 『인간 실격 1~3』, 대원씨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