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어느새 2023년이라는 책도 다음 권을 향해 빠르게 책장이 넘어가고 있다. 올해의 나는 잘 살아왔을까.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그냥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건지, 거듭 생각하게 된다. 때로는 떠다니는 단상들을 하얀 화면에 활자로 정리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이것은 분명 나의 정신 건강에 좋은 일이다.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 미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9월 1일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어느새 월급을 세 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내 주머니 사정은 풍족하다고 할 순 없다.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자취하는 평범한 30대 직장인의 한계라고 해야 하나. 절약에도 더 이상 노력할 수 없는 선이 존재하는 것 같다. 9월 이후의 절약 생활에 대해 잠시 돌아보자.
비싼 프랜차이즈 커피는 아니더라도, 종종 마시던 카페 커피를 거의 끊었다. 대신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2+1’ 커피를 교실 냉장고에 쟁여두고 마신다. 툭하면 이용하던 택시의 달콤한 유혹을 끊었다. 대신 버스를 타고, 걷는다. 배달 음식을 끊었다. 대신 닭가슴살과 현미 햇반이 내 일상에 자리 잡았다. 쇼핑을 끊었다. 올겨울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나와 내 동생 롱패딩 하나씩 구매하긴 했지만, 생존을 위한 쇼핑 정도는 좀 봐줘도 되지 않을까. 요약하자면 카페 커피, 택시, 배달 음식, 쇼핑을 끊어냈다. 나는 정말로 절약을 잘하고 있다.
다음은 ‘겸허’에 대한 단상.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가 있음.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겸허의 의미가 이렇게 나온다. 나는 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겸허한’ 자세로. 절약에도 불구하고 돈이 모이지 않는 이유를 덤덤한 태도로 분석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당연히 ‘그만큼’ 쓰는 곳이 많기 때문이었다. 여러 번의 결혼식이 있었다. 여행도 다녀왔고, 데이트도 즐겁게 했다. 친한 동생이 운영하는 스튜디오에서 300일 기념 촬영도 했다. 사람들을 만나 술도 마셨고, 고양이들도 아낌없이 챙겨주고 있다. 온풍기를 두 대 구매했고, 생필품을 계속 구매한다.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낸다. 통신비, 식비, 보험비도 꾸준하게 나간다.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법이다. 나는 ‘저축’이라는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내 의지대로’ 수많은 선택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니 받아들이자. 앞으로는 무조건 모이는 돈이 더 많아질 것이다.
허리띠를 더 졸라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절약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면 돈이 모이는 속도는 앞으로도 매우 더딜 것이다. 우선 여럿이 모이는 술자리가 아니면 굳이 술 약속을 잡지 않아야겠다. 잦은 술자리는 내 건강에도, 지갑 건강에도 좋지 않다.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도 술을 참아야겠다. 정말 특별한 기념일이 아니고선, 소주 한 잔의 유혹을 떨쳐내자. 결혼식도 정말 나의 내핵에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참석하지 말자. 그냥 50,000원을 보내주고 참석하지 않는 것이 시간과 돈을 절약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치킨을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자.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아끼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이렇게 쓰고 보니 돈이 빠져나가는 구멍은 늘 ‘관계’의 비중이 컸던 것 같다. 다음으로는 술. 술을 줄이고, 가족과 여자친구를 제외한 만남을 최소한으로 줄인다면 통장에 돈이 모이는 속도가 더 빨라지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차기작을 쓰기 시작하는 것. 절약에는 한계가 있지만, 금전적 성공에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늘 노력하는 만큼 거머쥘 수 있는 행복의 크기가 커진다고 믿는다. 지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써보자. 난 충분히 가졌고,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