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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랭 Jan 01. 2018

너라는 개 고마워 : 12. 알아간다

처음이라서.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라는 말이 있다. 실전 경험은 없으면서 책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글로 연애를 배워놓고 연애박사인 척 하는 모습을 뜻하는 말인데 무엇이든 경험이 중요하고 부딪쳐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지만, 처음 겪는 일에서 자신감있게 맞서기란 참 어렵다. 첸의 여러 가지 문제 행동들 앞에서 나 또한 처음이라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책을 사다가 좀 볼까, 아니면 인터넷을 좀 찾아볼까 그렇게 떠도는 글을 통해서라도 알아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변에 강아지를 오래 키웠던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썩 명쾌하지는 않았다. 내가 더 단호하게 혼을 내서 울지 못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첸이 좀 별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래저래 답답한 와중에 우연히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세나개)’를 보게 되었다. 그 날 문제견으로 나온 아프간하운드는 여러 부분에서 첸과 닮아있었다. 아프간하운드다 보니, 첸보다는 몸집이 적어도 다섯 배는 더 커 보였는데 하는 짓은 너무나 똑같았다. 주인이 집을 비우자 그 긴 다리로 대형견용 울타리를 훌쩍 넘어 현관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힘겹게 울어댔다. 그 녀석의 목에서 쇳소리 같은 것이 흘러나왔는데 주변의 민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대 제거를 선택했다고 주인이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인지 짖는 것도 흐느끼는 것도 아닌 그 목소리가 더욱 안쓰럽게 들렸다.


일명 ‘개통령’ 강형욱 훈련사님이 내린 처방은 분리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훈련이었다. 주인이 옷을 입거나 모자를 쓰면 외출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반려견들은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런 행동을 역으로 이용해 반려견을 속이는(?) 것이다.


우선, 주인이 모자를 들고 나선다. 강아지에게 나갔다 오겠다는 손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대신 밖에서 5초만 세고 다시 들어온다. 이걸 10초 20초 이렇게 늘려가면 정말 신기하게도 주인이 다시 돌아올 것이란 걸 이해했다는 듯이 자기 자리에 편안히 누워 기다렸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나는 첸을 데리고 바로 훈련에 돌입했다. 내가 겉옷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첸은 난리가 났다. 이제 현관문을 닫고 숫자를 세려는데 이미 1초도 안돼서 첸이 자지러졌다. 주변의 민원이 무서워 나는 금세 포기를 해버렸다. 첫 시도는 이렇게 끝이 나 버렸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소리치지 않아도 훈련을 할 수 있겠구나. 역시 방법은 많이 있다는 것을.


외출하는 나를 보며 울어대는 첸에게 나는 때때로 짜증을 내기도 하고 난장판을 만들어놓은 방바닥을 신경질적으로 치우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 모든 원인에는 나의 행동이 영향을 주고 있었음을 이해해야 하는데 꼭 그럴 때만 나도 모르게 첸을 사람처럼 바라보고 화를 냈다. 이렇게 좀 하지!라는 마음. 내 마음을 그렇게 찰떡처럼 알아들었다면 그게 강아지인가. 그 후에 나는 몇 권의 반려견 훈련을 위한 책을 샀고 세나개를 더욱 열심히 보았다. 그렇게 첸을, 반려견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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