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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랭 Mar 04. 2018

너라는 개 고마워 : 17. 중성화 수술

중성화 수술을 하고 나면 좀 얌전해질까요?

말썽쟁이 첸이 집을 초토화해놓는 날이면 나는 속상한 마음으로 인터넷 검색을 자주 했다.


'강아지 얌전해지는 방법'


이런 식으로 검색을 해 보면 연관해서 나오는 이야기 바로 '중성화'였다. 대체적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수컷 강아지들은 중성화를 하고 나면 수컷의 본능이 사려져 얌전 해 진다는 것이 여러 사람의 의견이었다. 첸은 중성화를 하지 않은 강아지였는데 아마 너무 어려서 중성화를 하지 않고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것 같았다.(당시 5개월)


키우는 입장에서는 무척 난감한 순간들이 많았다. 1년도 되지 않은 망아지 같은 첸은 암컷 강아지를 만나면 주인이라는 존재는 까맣게 지우고 앞으로 달려가기 바빴고 우리가 출근하며 집을 비우면 그곳은 이미 첸의 놀이터가 되어 오줌 밭, 똥밭, 누더기 밭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중성화를 하고 나면 그런 문제가 약간이라도 해결이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있었다. 또 중성화가 되어있지 않다 보니 애견카페에 가는 것도 자유롭지가 못했는데 중성화를 하고 나면 애견카페라던지 애견 운동장에도 맘 편히 데려갈 수 있으리라. 어차피 교배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 중성화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중성화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니 주변에서는 강아지가 너무 예쁜데 중성화를 하는 게 너무 아깝지 않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특이한 무늬에 하얗고 땡그란 눈. 예쁜 외모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집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수컷 강아지로서의 본능을 지키며 자신의 삶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그저 나의 상상일 뿐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불쌍한 마음에 한 번이라도 경험(?)을 시켜주고 중성화를 할까 고민을 해 보았는데 한 번이라도 교배를 경험한 강아지는 더 그 욕구(?)를 참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서 그 마음을 접었다.


첸 중성화하는 날, 아침부터 첸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침에 맡기면 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고 마취가 깨는 동안 시간이 좀 걸려 오후에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첸은 땡그란 눈을 꿈뻑꿈뻑대며 간호사 언니에게 안겨 수술실로 들어갔다. 첸이 혹시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나, 수술이 잘못돼서 많이 아프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오후쯤 전화가 왔다. 그 날 시댁 식구들 집들이 때문에 나는 집에서 첸을 맞아할 준비를 해 놓고 식이가 첸을 데리러 병원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온 첸은 마취가 덜 풀려 온 몸에 힘이 없었다. 첸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바닥에 내려놓으면 자꾸만 내 무릎에 오려고 낑낑 울었다. 그 모습을 보니 발랄하던 첸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어 더 마음이 아렸다. 식욕이 떨어졌는지 좋아하는 밥을 근처에 둬도 도무지 먹지를 않았다.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동안 나는 잠시 첸 옆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사람이랑 함께 살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통과 의례 같은 중성화. 무슨 일을 당하는지도 모른 채 수술대 위에 올랐을 녀석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아팠던 만큼 내가 더 잘 돌봐 주어야지, 그렇게 마음먹었다.


중성화를 하고 난 뒤에는 한 3일 정도 힘이 없이 누워있는다고 들었는데 에너자이저 첸은 역시 다음 날 벌떡 일어나 온 집을 헤집고 다녔다. 목이 어찌나 긴지 깔때기는 아무 소용이 없고 자꾸만 상처부위를 핥아 대는 탓에 곤욕을 치렀다. 중성화 후에도 첸은 여전히 말썽꾸러기였고 '얌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건강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고맙고 또 사랑스러웠다.




첸의 매력포인트 구경오세요 :)

instagram @dal_e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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