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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랭 Jun 28. 2018

너라는 개 고마워 : 24. 쿤이라는 강아지

서울에 몇 안 되는 친구 가운데 같이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고릴라 흉내를 잘 내는 '오'씨 성을 가진 마음 따뜻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별명은 '오소리'여서 '오쏘'라고 불렸지만 내 휴대폰에는 '오릴'으로 저장이 되어 있는 친구다. 어느 날엔가 카톡이 와서는 '야, 너 강아지 한 마리 더 입양할 생각 없어?'라고 물어왔다.

그때는 이미 첸의 말썽으로 잔뜩 지쳐있는 상황이라 '강아지는 무슨, 한 마리도 죽겠는걸!' 하고 웃으며 넘겼는데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자 싶어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기 회사 실장님의 친구분 회사에 웬 주인 없는 강아지가 있는데 내가 키우고 있는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랑 같은 종이 었다. 그 강아지는 어찌 된 것인지 주인 없이 그 사무실에서 계속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회사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돌봐주다가 지금은 그 실장님 친구분이 집으로 데려다 놓은 상태인데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저런, 하고 인상이 찡그려지는 마음이 아픈 이야기였지만 나는 한 마리로도 버거웠기 때문에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종종 한 번씩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고 소식을 들으며 지냈다.

쿤이는 첸과 비슷한 점이 많은 친구였다. 나이는 거의 2배나 많은 다섯 살이었지만 같은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종이 었고 '첸''쿤'으로 이름도 외자였고(사실 '쿤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더더욱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이탈리안 그레이 하운드들은 체형이 좀 독특해서 전용 옷이 있다.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첸의 첫 옷을 사주었는데 목부터 다리까지 한 번에 감싸주는 롬퍼라는 옷이었다. 줄무늬로 되어 있는 롬퍼가 있었는데 엉덩이 부분에 주머니도 달려있어서 너무 귀여워서 이것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과 완전히 똑같은 옷을 쿤이가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필 그 많은 옷들 중에, 그 많은 색깔들 중에 남색 스트라이프라니!! 이것은 운명인가? 만나보지도 않은 강아지에게서 익숙한 향기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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