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ㅡ맛

글-맛: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최진영)

2013.12.23. (주)실천문학

by grim jari
글-맛: 글이 가지는 독특한 운치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



이 책은 두 번 읽었다.

중반쯤 읽다가 가슴이 무거워져 멈추고-

시간을 좀 보내고 펼쳤을 땐 완독 할 수 있었다.


최진영 작가의 글답게 서사가 딥하고 감정의 날것이 흡입력 있게 흘러가니, 책장은 빨리 넘어가고 몰입도 잘 되지만 기분이 복잡해졌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에 가슴을 찔렸다.

주인공 원도가 진짜 살아있을 것 같고, 심지어 세상에는 원도가 많을 것 같아서 무거워졌을까.

아니면 내가 원도 같아서?



원도는 자기 인생을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자기 인생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고, 자기만의 인생이란 게 과연 가능한지도 알 수 없었고, 알 수 없는 그것을 책임지겠다고 선뜻 나서고 싶지도 않았다. 듣는다면, 이런 말을 듣고 싶었다. 네 인생을 책임져라가 아니라, 네 인생은 없다. 너만의 그것은 없다. 그러니 안심해라. 맘껏 낭비해라.
-p20


그러고 보니 정말, 인생을 낭비하라는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1초라도 허투루 쓰면 망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리는 게 익숙한데 말이지. 어떻게 낭비해야 되는지조차 잊은 것 같기도 하고.


산 아버지는 자유를 강조하며 자유를 비좁은 틀에 가뒀다. 자유를 명령하는 방법으로 자유를 몰수했다. 원도는 담배를 계속 피우거나 끊는 대신, 아버지 모르게 피우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제시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아버지에게 원도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지만, 친구들에게 원도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었다. 그런 식으로, 어른이 될수록, 원도는 조각조각 나뉘었다.
-p116


인간은 단 한순간도 역할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담보와 같다. 역할 혹은 상징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자유를 뺏긴다. 아니다. 원래 없는 것이므로 뺏긴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 살아 있는 이상 자유는 없다.
-p161


자유.

항상 갈망했던 그것.이었지만

엄마라는 역할의 옷을 입으면서 가장 많이 하는 게 바로 자유의 몰수다.

내가 정한 틀 안에서 자유를 몰수하고 내가 허용하는 한에서 자유를 명령한다.

어휴, 이러려고 아이를 낳은 게 아니건만... 위험하거나 청결 때문이라는 이유로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고 겁주는 나의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줄이야.




매 순간 살면서 죽어가고 있다. 삶은 어정쩡하며 모호하다. 희뿌연 단어다. 죽음의 반대는 삶이 아닌 탄생이다. 탄생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지나면서부터 죽음에 가까워진다. 적어도 원도는,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며 원치 않아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 때문에, 궁극의 자유를 꿈꿀 수 없었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는 죽음을 선택했다. 선택? 선택이었을까? 자유롭게? 자유였을까? 정말 그것을 원했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의심 끝엔 마침표처럼 언제나 동일한 질문이 들러붙었다.
자, 질문은 다시 시작된다.
도처에 죽음이 널려있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p175


원도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질문.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엄마 안아주세요 말하며 눈 주위가 벌게지는 원도의 얼굴을 언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좋아하게 된 이후에나 만들어진다. 어떤 부분에 끌리는 것이 아니다. 끌린 후에 이유를 찾아내는 것도 아니다. 끌림이 식었을 때, 내가 대체 이 사람을 왜 좋아했던가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그때에야 찾거나 만들게 되는 이유들.
-p205


읽고 보니 정말 맞는 말 같다.

열정이 김 빠지듯 사라지면, 감정적이던 가슴이 객관적으로 태도를 바꾸고 변한 이유를 명료하게 찾아낸다.

먼저 가슴이 훌쩍 사랑해 버린걸 깨끗이 잊어버리게 되는 마법.

-

토닥토닥.

원도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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