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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임스 Mar 02. 2019

친구놈 전 상서 Vol.2

로잔, 스위스의 마지막 밤에.

J야,


생각(정확히는 계획) 없이 길을 나왔다가 유럽까지 흘러와서 너를 만나고 간다.


비싸디 비싼 유럽에서도 가장 물가가 비쌀 때에 가장 비싼 곳에서 널 만났구나. 신세 질 요량은 0.1도 없었건만, 결국 많은 것을 신세 진 마음으로 곧 마지막 밤을 자고 다시 길을 떠난다.


G(친구놈 전 상서 참고: ㅆㅅㄲ)를 만난 고등학교 때 너도 만났지. 아마도 2학년쯤으로 생각된다. 네 존재를 각인한 것이. 덩치가 컸지. 싸움도 잘하고. 물론 소문만 듣고 여태껏 네가 주먹 한번 휘두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렇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그런 사이였던 것 같다. 관심사나 같이 웃고 떠드는 것에 잘 통했던 것 같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남고의 역학적 구조상 내 기억으로는 서로의 리그가 조금 달랐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래도 어린 시절 뭐가 그리 복잡했겠나.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농구공을 튀기고 코트와 운동장을 뛰어다니면서 서로 별 탈 없이 지냈지.


시간이 흘러 대학에 들어가고 나와 G도, 물론 체대로 간 너도 각자의 길을 걷기를 시작하고 고등학교 때처럼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지만 농구(라는 한심한 공놀이)를 매개로 다시 만났지. 우리뿐만 아니라, 그 어린 시절 공 좀 튀긴다는 애들이 다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던 그런 얼굴들.


네가 만든 BIZ는 그렇게 역사를 주욱 써 내려갔다. 우리의 관계도 점점 시간이 덧대어지고 발전해나가더라. 신기하지. 어릴 때는 우정에 보이지는 않아도 어떤 카테고리나 선이 있는 줄만 알았다. 아니, 일부러라도 그렇게 믿으려고 했지. 가장 가까운 서랍에 G를 넣어두고서. 뭐 그런 식이었어. 그런 나의 옹졸한 마음이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깨어지기도 했고,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니 친구란 게 별 다른 것이 아니더라.


그냥 친구라고 서로 생각하고 신의와 애정으로 대하면 그게 친구더라고. 나랑 십몇년을 알던지, 아니면 나랑 같은 반이어서 짝꿍을 몇 달 했는지 그런 유치한 범위가 분명히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우치는 데는 사실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다.


아마도 서로가 가장 힘든 시기였지? 수년 전 스위스 유학 다녀와서 다시 한국에서 투 잡, 쓰리 잡을 뛰는 너와 짬짬이 만나면서 두 판에 3천 원이었던 만두를 먹던 시간이- 돌아보면 무슨 대단한 로망이 있겠냐만은, 그때 별 이야기는 나누지 않아도 같이 만두와 싸구려 커피 앞에서 나누던 한숨들이 나는 묘하게 기억이 많이 난다.


그래도 언제나 현실에 낙담하거나 게으름에 안주하지 않는 네 놈이었기 때문에, 또 나 또한 별다른 소득은 없어도 하고자 하는 일에 진심 전력을 다 하는 마음만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순식간에 텅 빈 만두 판과 얼음만 가득한 빈 잔을 두고 또 금세 자리를 일어나야 할 때마다 알 수 없는 희망이 있었다.


미니멀리즘을 핑계로 축의금도 얼마 못 내고, 미안한 마음에 큰돈을 줘도 안 찍는 웨딩 촬영을 나갔던 기억도 나네. 친구 사이에 그게 뭐 대수랴,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생각이 변해서 어디 커뮤니티에 이런 말을 올렸다가는 내가 아마 악플에 마상(마음의 상처; 라고 써야지 J가 알아볼 듯)을 입을 테지.


누차 말하지만 결혼을 위한 너의 프러포즈가 식겁잔치가 된 이유는 다 너의 엉성한 계획 때문이지 나의 역할 때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천재가 기지를 발휘해 너의 프러포즈를 성공으로 이끌고 결국 식장에까지 졸졸 따라가게 된 것에 다 표현하기 힘든 뿌듯함이 있다.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이 자식아.


고맙다, J야. 네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곧 세상에 가장 큰 축복을 만날 테지? 아이도 너를 아버지로 만나는 것이 큰 축복이라고 생각이 된다. 항상 건강하고,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 희생하던 네 마음과 지갑을 이제 가족으로 옮겨라. 물론 나와 G를 만날 때는 예외로 해라. 나는 사실 한국의 새로운 IOC 위원이 언젠가 나한테 공짜 올림픽 티켓을 전할 날이 있겠지- 하는 적폐적 사심도 크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항상 나와 G를 예외로 해라.


나이가 들어서 좋았다. 시간과 거리감을 논외로 할 수 있는 우정에 대한 인식이 생겨서.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시간과 거리감이 항상 가깝고 동일했던 '곁에 두고 오래 사귄 벗'을 말할 수 있어서 더 좋구나. 스위스에서의 일과 생활 모두 멋지게 해 나가길 바란다. 같은 공간에 놓일 날이 언제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계속 함께 늙어가자.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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