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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임스 Feb 12. 2019

피라미드 동네에서 만난 사진 스승

1월 28일, 2019년의 기록을 옮겨 쓰다.

충동적이고 열정적인 로망을 포장하며 특가항권권을 하이에나처럼 물어, 이집트로 왔다.

카이로에 도착하자마자 기자로 향했다. 무조건 숙소에서 피라미드가 보여야 한다는 단순한 조건을 찾아서. 첫날밤부터 어둠 속에도 우뚝 솟아 존재감을 내던 피라미드는 해가 떠오르니 위용이 더욱 대단했다. 숙소와 피라미드 사이의 거리는 걸어서 3분 정도의 거리였으므로 마을 어디에서나 피라미드가 커다랗게 보였다.

흔한 사진이 찍고 싶지 않아서 여느 때처럼 본래 목적이었던 피라미드를 입장하지 않고 주변의 골목들을 배회했다. 오전과 이른 오후까지도 피라미드에 입장을 하지 않고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느릿한 걸음으로 뒷짐을 지고서. 사진을 찍으러 나왔건만, 동시에 사진이야 뭐 큰 상관이 없다는 냥 점잖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모래바람과 순식간에 나를 핵인싸로 만들어주는 이집션들을 피해 자꾸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딱 원했던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피라미드와 사람들의 삶이 지나치게 극적으로 혹은 너무 옅지도 않게 적당히 겹쳐진 느낌의 풍경. 아이들과 벽에 묶인 흑마 하나가 철장 너머의 피라미드와 묘하게 잘 어울렸다. 벽에 그려진 아랍어 낙서도 좋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멀리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시선을 다시 근경으로 옮겼을 때는 이미 아이들이 이방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특히나 관심을 보이며 자꾸만 프레임 안쪽으로 들어왔다. 카메라를 내리고 미소를 보이니 순식간에 내 오른쪽 옆구리를 차고 서서, 질문들을 쏟아낸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 남쪽."
"피라미드는 저쪽이에요." "응, 괜찮아요. 여기도 좋아요."

"뭘 찍어요?" "피라미드, 말, 그리고 이집트 색깔?"
"말 찍어요, 말." "그럴까?"

찍은 사진을 아이에게 보여주니 뭔가 성에 차지 않는 듯, 갑자기 내 손에서 카메라를 뺏으려고 한다. 어색하게 몸에 걸쳐진 스트랩 채로 소녀에게 반쯤 몸을 기대고 기다리니 그녀가 고사리 손으로 설정 버튼을 눌러댔다.

"아아, 그거 말고. 이걸 눌러야 해."

다시 소녀의 여린 힘에 모가지(?)가 반쯤 꺾여서 끌려간 뒤에야 카메라를 돌려받았다. 아이의 호기심에 조금이라도 생채기를 주고 싶지 않아서 친절하고 선한 마음의 태도를 열심히 유지하며 조금 시간을 보내다가 구석진 길을 돌아 나왔다.

저녁에 돌아와서 카메라를 다시 켰다. 내 사진과 소녀의 사진이 겹쳤다. 정말이지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내 사진보다도 그녀의 사진에 시선을 뺏겼다. 구도라는 것은 없었고 초점도 다소 어긋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더 갔다.

금세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머릿속에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다시 몰려왔다.

수년 전에 똑같이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으며 길에서 프레임을 담는 프레임, 그 마음의 창조차도 없애고 싶었다. 생각이라는 게 간사하여 잘 연마되더라도 결국에는 어떤 그릇에 담기기 마련이다. 마음이 몸이라는 물질적 한계에 담겨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소녀가 내 팔을 잡아끌며 조르듯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말 찍어요, 말."

그날은 아이가 날 심하게 가르친 날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Giza, Egypt, 2019 @dalaijames

* credit the last photo to the girl with red dress. gave my camera to her and she took that great shot. it was so inspirational to me, far beyond composition, focus or anything else matters.

#이집트
#피라미드

#사진생각


피라미드 동네에서 만난 사진 스승 @dalai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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