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도시, 루앙프라방

#057

by J임스

#057


아침이 되니 숙소에 와이파이가 잡혔다.

스카이프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다 큰 어른이지만 부모에게 자식은 언제나 아기다.

연락이 늦는다고 다그치시는 어머니 목소리에 근심이 가득하다.


오늘 오전은 제니퍼와 각자의 일정을 보내기로 했다.

고작 이틀을 보냈을 뿐인데, 벌써부터 왠지 그리운 것 같기도 하다.


오토바이를 반납하고 그녀의 여권을 대신 받아왔다.

여권사진을 보고는 괜히 피식 웃어버렸다.


캐나다 여권은 신기하게도 영어와 불어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한 때는 타국의 여권이 괜히 부러웠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나라 여권이 새삼스레 자랑스럽다.


뿌리가 바르지 못하면 줄기와 가지도 힘차게 뻗어나가기 어렵다.

나는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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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위해 시나와 린다, 제니퍼와 새로운 홀란드 친구 루벤이 모였다.

다시금 여행자들의 대화가 시작된다.


루벤에게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줄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니퍼도 나도 서로 반짝이는 눈으로 말없이 끄덕거렸다.

식사를 마치고 학교를 찾아갔지만 아쉽게도 당분간은 추가 인력이 필요 없는 모양이다.

마냥 아쉬운지, 제니퍼는 지나가는 아이들을 붙잡고 조금이라도 가르쳐주려고 한다.


사람의 선은 종종 마음이 아니라, 행동에서 오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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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쉬다가 다시 만나 왓촘펫(Wat Chom Pat)에 간다.

루앙프라방 최고의 석양을 만나러.


사공을 사서 메콩강을 건너가야 한다.

느릿한 나룻배가 사공의 능숙한 손놀림을 따라 강을 가른다.


메콩강과 강을 끼고 모습을 드러내는 웅장한 산세, 폐허가 된 사원의 기이한 고립감까지.

모든 게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도시에는 황금이 있다.

매일매일 그 모습이 새로운 거대한 황금이.


꼬마 아이가 아까 사원으로 오르는 계단을 따라서 폴짝폴짝 우리를 따라왔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아이의 손을 잡고서 나란히 계단을 올라왔는데, 이런 곳까지 찾아온 우리가 신기한 건지 아니면 적선을 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아무 말 없이 계속 졸졸 따라온다.


보통은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데, 수줍음이 많은 이 아이는 그런 것도 없이 마냥 따라온다.

어느새 이 꼬마 녀석도 황금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폐허가 된 사원 정상에서 보냈다.

제니퍼도 나도 서로 아무런 말없이 그냥 그렇게 각자의 황금을 바라보면서.


적잖이 심심해 보이는 아이에게 사진기를 건네주었다.

순진한 아이는 순간 당황한 듯 보였지만 내가 연신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조심스레 두 손으로 카메라를 받아 들었다.


카메라를 보고 나를 한 번 쳐다본다.

나를 보고 카메라를 한 번 쳐다본다.


쌩긋하고 웃어주었다.

‘괜찮아’라는 정도의 미소로.


서툴게 카메라를 주변으로 돌려 보더니 이내 나를 다시 쳐다본다.

내가 다시 다가가 카메라를 들고 간단한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그제야 아이는 활짝 웃으며 다시 카메라를 받아 들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에게는 저 거대한 황금이 보이지 않는지,

아니면 애초에 그런 것 따위는 이 어린 친구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지,

오히려 사원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찡그린 눈으로 조그만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뿐이었다.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내게 너털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아마도 그 순간 같은 웃음이 내 뒤로 제니퍼에게도 터져 나온 것 같았다.


삶이란,

인생이란 정말 거대하구나.


사원을 내려올 때는 아이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또 만나자’라는 나의 마음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손도 꽤나 단단하게 내 손을 잡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강어귀로 내려오니 사공이 기다리고 있다.

다시 배를 돌려 마을로 돌아간다.


뱃사공의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 둘의 마음 때문인지,

지긋한 미소를 담은 사공의 나룻배는 가로질러 건너왔던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꽤나 멀리 강을 돌고 돌아 마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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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에 없던 작은 성의를 그에게 지불하고 육지로 올라왔다.

미소에 미소가 꼬리를 무는 오늘 하루다.


황금이 지나간 자리에는 이제 조용한 어둠과 커다란 보름달이 떠있다.


달은 간만에 그녀의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가늘고 긴 그녀의 옷자락을 메콩강 위에 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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