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
#060
오전부터 숙소 매니저인 파(Pa)가 추천한 투어에 참가했다.
9시부터 하루 종일 ‘Caving, Tubing, Trekking, Kayaking’을 한다.
썽태우를 타고 한참을 강상류로 올라간다.
흔들흔들, 덜컹덜컹.
그렇게 한참을 올라간 강의 어귀에는 벌써 몇 대의 썽태우가 먼저 와있다.
슬로우보트에서 만났던 중년의 독일 여성인 메리안과 시나가 함께 있었다.
이제는 우연한 만남이 익숙할 만도 하건만, 역시나 반가움은 숨길 수 없다.
현지인들이 가리키는 손 끝으로 시선을 따라가 보니 강의 절벽 아래에 작은 입구가 보인다.
저기가 아무래도 동굴인 것 같다.
가느다란 줄이 함께 동굴 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줄줄이 튜브 위에 몸을 얹고서 줄을 잡고 하나둘씩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즐거움인지 무서움인지 알 수 없는 비명들이 동굴 안에서 메아리로 흘러나왔다.
그래도 한참 기다려보니 들어갔던 사람들이 다 무사히 나왔다.
메리안, 시나와 한 조가 되어 드디어 차례가 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녀들보다도 내가 아마 서른두 배 정도는 더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은근히 겁이 많다.
절박한 얼굴로 동굴을 나오니 괜히 뿌듯하다.
아무도 내 겁에 질린 얼굴은 보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다시 계곡으로 올라오니 아까는 보지 못했던 비키니 차림의 두 아시안이 보였다.
생긴 것은 꼭 아시안인데도 서로 자연스럽게 영어를 하고 있었다.
미카와 졸린은 필리핀 출신으로, 보기에도 상류층 따님들 같은 느낌이 충분했다.
왠지 방비엥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화려한 비키니를 입은 채로 모두와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휴가를 온 것이 분명한데도 겉돌고 있는 듯한 두 친구의 모습에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대화를 해보니 이 두 아가씨들도 새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 하는 눈치다.
그래서 저녁식사에 초대를 했다.
여행자는 서로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호스트이자 게스트다.
카약킹까지 마치고 나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오늘은 투어 덕에 아주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우리는 함께 파티를 열기로 했다.
축제에서의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모았다.
파티다!
여행자에게 약속이란 종종 사치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서는 시끌벅적한 곳으로 모두가 모여들게 되어있다.
저녁시간이 되자 금세 스무 명이 넘는 여행자들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펍으로 모였다.
서로 나누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나누고, 곳곳에서는 악수가 계속된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괜히 뿌듯한 기분이다.
메리안과 시나, 미카와 졸린도 와주었다.
그러다 네 명의 한국인들도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한국인들과 한 자리에서 술을 나누어 마셨다.
나눈다- 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그런 술 말이다.
네 명의 형, 누나들은 모두 베트남에서 현재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휴가차 잠시 라오스로 넘어왔다고 했다.
곧 나도 국경을 넘어 베트남으로 넘어갈 생각이라, 다시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뒤늦게야 바(Bar)에서 익숙한 얼굴을 본다.
슬로우보트 배신자 에드워드다.
홀로 외롭게 술을 마시고 있는 친구를 보자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시나를 데려왔다.
금세 밝은 얼굴이 된 에드와 수다스러운 시나를 뒤로 하고 나는 벌게진 얼굴을 데리고 나왔다.
비틀거리며 도착한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도미토리로 들어오는데 앞에 누군가가 앉아 있다.
술이 단번에 깰 정도의 미녀가 웬일인지 한참이나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타티아나를 알게 되었다.
남의 연예상담을 여기에 와서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열심히 들어주었다.
이렇게 엄청난 미인을 이 외딴곳에 홀로 남겨둔 그런 못난 녀석을 한껏 질투하면서.
그녀의 짧은 영어는 내가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이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되지 않았다.
이 날의 기록 말미에는 취한 듯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다.
‘이탈리아엔 반드시 가야 한다’라고-
그리고 다음 날부터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