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사막의 라디오

#091

by J임스

#091


오늘도 역시 형준이가 일등으로 루프탑에 올라와 있다.

숙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부터 함께 낙타 사파리를 떠났다고 한다.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으로 오랜만에 조용히 책이나 읽을까 했더니,

사람들이 또 어디서 나타났는지 끊임없이 가지의 레스토랑을 오고 갔다.


이 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책은 펴지도 못한 채 그냥 바닥에 내려놓았다.

점심식사 때가 되자 민희와 아영이가 차례로 올라왔다.


인원이 여럿이라 가지에게 치킨을 주문해본다.

오랜만에 구경한 닭고기에 너나 할 것 없이 손이 빠르다.


폴루가 어느새 옥상에 올라와서는

식사를 마친 우리에게 슬그머니 사막 파티에 가자고 바람을 넣는다.


굳이 내가 미안할 일은 아니지만 사막 사파리를 거절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무엇보다 형준과 일행들이 모두 찬성해 500루피씩을 내고 폴루의 지프(Jeep)를 타기로 했다.


뭐, 재미난 일이 있지 않을까 하고.


아무런 기대도 없던 오후가

차에 올라 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

완벽히 바래왔던 사막 어드벤처(Adventure)가 되어버렸다.


네 명의 남녀 승객을 가득 실은 지프는 성과 도시를 뒤로 하고 드넓은 황무지 사막으로 달렸다.

폴루는 연신 콧노래를 부르며 계속 차를 몰아 우리를 파키스탄(Pakistan)과의 국경 지대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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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바위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더니

어느새 주변 풍경이 사구(Dune)가 있는 사막으로 바뀌었다.


낙타가 뛰어다녔다.

아주 커다란 낙타들이-


동물원에서 본 낙타들이랑은 크기가 많이 달랐다.

아주 컸다, 아주.


낙타는 모두 낙타꾼들과 함께 있었는데

아마도 낙타꾼들이 이 곳 국경 지역으로 잔뜩 몰려와서는 주로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


폴루가 파키스탄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바가지를 엄청나게 씌우니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문득 반대쪽(파키스탄)에서도 똑같은 말을 할지가 궁금해졌다.


때마침 석양과 어울려 사막과 낙타들, 그리고 근사하게 펼쳐진 모래 언덕들이 황홀감을 주었다.

카메라에 모래가 들어가든 말든 연신 떨어지는 붉은 해를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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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자 폴루는 근처에 있는 리조트로 우리를 데려갔다.

황량한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서 인도식 식사와 함께 작은 공연을 시작했다.


전통 악기들을 연주하는데 그 선율은 비록 낯설었지만,

스스로조차도 본인의 음악에 한껏 취해 버린 듯한 연주자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네 명 모두가 나란히 앉아서 서로의 체온으로 사막의 한기를 물리치며

그렇게 아주 낯선 곳에서 아주 낯선 경험들을 하고 있었다.


무희의 춤은 달아올랐고 모닥불은 좀처럼 꺼질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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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돌아오던 길에선 쏟아지는 별과 함께 달리는 차창 밖으로

무심하게 우뚝 솟아오른 커다란 붉은 달이 하루를 완성했다.


폴루는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지지직거리는 스피커의 소음이 되려 이상하리만치 편안했다.


덜컹거리는 차창 밖은 여전히 지독하게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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