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로그"라고,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공유하는 콘텐츠가 있다. 예쁜 영상과 거기에 알맞은 배경 음악이 깔린 누군가의 시간을 훔쳐보고 있으면, 참 그들의 삶은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이따금 내 하루의 브이로그를 머릿속에 그리며 지내본다. 내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그 아름다운 영상을 글로 풀어보려니 참 민망하지만, 눈에 보이듯 귀에 들리듯 한 번 적어보겠다.
아침 7시에 눈을 뜬다. 아이들은 보통 8시에 일어나니까 나에게 1시간의 고요한 순간이 허락된 것이다. 잔잔한 피아노곡이 흐르며 가볍게 스트레칭하는 맨얼굴의 내가 등장하지만 전혀 초췌하지 않다. 몸을 가볍게 풀면서 네스프레소 한 잔을 내린다. 커피 향을 맡으며 밤사이 올라온 서평들을 읽고 오늘 할 일을 잠시 생각해본 뒤, 아이들이 깨기 전에 샤워를 한다. 아이들이 깨고 난 후 출근 준비를 하는 건 전쟁터에 나갈 마음의 준비가 됐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8시가 되면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을 준비한다. 눈도 잘 못 뜨는 아이들 코앞에 밥상을 들이밀어놓고 30분까지 다 먹으라고 시킨 후 화장을 한다.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이놈들이 아침을 잘 먹고 있는지 지속 체크하고, 다 먹었다 싶을 때 치실과 치약이 묻은 칫솔을 손에 쥐어준다. 빨리 이 닦고 양말 신으라고 닦달하는 엄마와 세상 여유로운 아이들의 온도차는 언제나 극명하다.
9시가 되기 전에 첫째를 보내고 둘째 유치원 등원을 위해 차에 올라탄다. 오늘 있는 중요한 미팅 때문에 평상시 입지도 않는 정장에 높은 구두를 신어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마치 원래 이런 옷을 자주 입었다는 것 마냥 자연스럽게 아이의 등원을 마치고 회사로 출발한다. 아이와 헤어지는 그 순간부터 나는 일하는 여성으로 마음을 바꾸고 몸가짐을 고쳐먹는다. 출근하는 차에서는 쉬다이닝에서 제공하는 원서 읽기 음원을 듣는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원서 속 남녀가 되어 설렘을 얻는다.
출근까지만 기록해도 이 정도다. 그러니 출근해서 하는 업무, 퇴근길, 퇴근 후 아이들 케어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나는 법, 필라테스를 가고 집안을 정리하고 잠자는 시간까지 내 스스로 멋진 사람처럼 상상해 보자면 끝이 나질 않는다.
사실 이런 상상을 하는 건 지금을 살아내는 나만의 방법이다. 일하면서 아이도 케어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는 고된 하루를 보내는 것도 힘든데, 그 일이라는 것이 내가 절실히 원하는 것도 아니기에 스스로를 다독여 보고자 시작하였다.
혹자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당장 해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지금을 살고 싶다면 하고 싶은 일을 바로 해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환경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하고 싶은 건 찾았지만 거기에 집중할 시간도 경제적 여력도 없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해 봤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정해놓고 거기에 내 삶을 구겨 넣는 것보다, 나의 때를 찬찬히 기다리며 시간을 정성스럽게 쌓아 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그때의 나를 상상하며 나는 오늘도 나만의 멋진 브이로그를 찍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