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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용 Jul 24. 2024

#4 건물주(主)가 아니라 건물주(酒)

소설 연재



서점 밖에는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이 정신없이 굴러다니며 소란을 피웠다. 서연은 책방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밥집은 밥 먹는 게 목적이지만, 책방은 책 구경이 목적일지도 모르겠다. 밥집도 밥 구경이 목적이면 웃기겠지.' 그런 실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손님은 거의 없고, 있더라도 책을 구경만 하다가 나가버리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책이 안 팔리는데 새로 바뀐 건물주는 월세를 더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흔히 사람들이 건물주를 신(God)에 비유하곤 한다. 서연은 왜 신성한 '신(God)'을 돈에 취해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건물주(())에 비유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연은 힘들게 이룬 책방이 한순간에 쫓겨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한동안 팔리기만을 기다리는 책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서연의 마음은 말라비틀어진 낙엽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서연 씨, 기쁜 소식이에요. 서연 씨?" 카페 사장 정민수 씨의 목소리에 서연은 화들짝 놀라며 인사했다.


"아, 정사장님, 웬일이세요?"


"재개발을 반대하는 서명 인원이 1,000명을 돌파했답니다. 상인회장이 알려줬어요. 이제 우리 골목상권을 지킬 수 있어요. 그동안 우리가 노력한 게 헛되지 않았어요. 진아가 가장 기뻐하겠네요." 정사장이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요? 서명 인원이 1,000명이나 넘었다고요? 와, 정말 감사하네요. 그럼 이제 우리 다음 절차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정민수 사장이 말했다. "김성우 씨랑 한번 모여서 의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분이 이쪽은 전문가시니까요.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서연은 정민수 사장의 말에 안도감을 느꼈다. "정말 다행이네요. 진아도 이 소식을 들으면 정말 기뻐할 거예요."


그날 오후, 서연은 진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진아는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서연은 진아에게 다가가 말했다. "진아야, 좋은 소식이 있어."


진아는 책에서 눈을 떼고 서연을 바라보았다. "언니, 무슨 소식인데요?"


"우리 서점과 상가를 지키기 위해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서명해 줬어. 재개발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진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정말요? 너무 기뻐요, 언니!"


서연은 진아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진아야, 너도 많은 도움을 줬어. 네 덕분에 우리가 힘을 낼 수 있었어."


진아는 기쁨에 차서 말했다. "저도 열심히 했어요. 친구들에게도 서명해 달라고 부탁하고, 이곳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야기했어요. 사실, 우리 반 애들도 학원 다니느라 쉴 시간이 없는데, 서점에 간다고 하면 부모님들도 좋아하니까…. 언니 책방이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거든요."


서연은 진아의 말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정말 고마워, 진아야.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해. 김성우 아저씨랑 만나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볼게. 언니만 믿어, 언니는 강하니까!"


그날 저녁, 서연과 정민수 사장은 김성우 씨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김성우 씨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는 서연과 정민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서연 씨, 정사장님, 반갑습니다. 기쁜 소식을 들었어요.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나요?"


서연은 세상을 호령할듯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네, 김성우 씨.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세요."


김성우 씨는 테이블에 서류를 펼쳐 놓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서명지를 지역 구청에 제출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방 의회와의 만남을 주선해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또한, 언론의 관심을 끌어내어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민수 사장이 물었다.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성우 씨는 대답했다. "지역 신문사와 방송국에 연락해 우리의 상황을 알리고, 인터뷰를 요청해야 합니다. 또한, SNS와 온라인 청원 사이트를 통해 우리의 목소리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습니다."


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우리 모두 함께 힘을 합쳐서 이 일을 해결해 나가요."


그렇게 서연, 정민수 사장, 김성우 씨는 힘을 모아 재개발을 막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에게 서명 운동의 성공을 알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며칠 후, 서명지를 제출하기 위해 서연과 정민수 사장은 지역 구청을 방문했다. 그들은 구청 담당자를 만나 서명지를 제출하며 재개발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서점과 상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장소입니다. 재개발로 인해 이곳이 사라지면 많은 사람들이 큰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이곳을 지키기 위해 서명 운동을 벌였습니다. 부디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서연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했다.


구청 담당자는 서명지를 받아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의 노력을 존중합니다. 서명을 잘 검토하고, 지방 의회에 전달하겠습니다."


서연과 정민수 사장은 구청에서 나와 서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제 첫 단계를 성공적으로 마쳤어요. 앞으로도 함께 힘을 모아 나아갑시다."


그들은 지방 의회와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지역 신문사와 방송국에 연락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서연은 인터뷰를 통해 재개발에 반대하는 이유와 서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서점은 단순한 상점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함께 이곳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서연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렇게 서연과 정민수 사장, 김성우 씨는 재개발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노력은 점차 결실을 맺어갔다. 지방 의회는 서명 운동의 성공과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반영해 재개발 계획을 재고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서점과 상가는 지켜질 수 있었다. 서연과 진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함께 축하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서점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장소로 남아 있었다.


"우리가 함께 이룬 결과예요. 모두 고마워요." 서연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렇게 원남동 서점은 다시 한번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서연과 진아는 그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로 성장해 나갔다.


서점 밖에는 바람에 낙엽이 이리저리 날리며, 여전히 정신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서연은 건물주와의 만남을 앞두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침착하게 서점 문을 닫고, 건물주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잠시 후, 건물주 박 씨가 서점에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세상 차가운 냉소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서연 씨, 할 말이 있다면서?" 건물주가 고압적인 어조로 말을 꺼냈다.

서연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네, 박사장님. 할 말이 많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박 씨는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서연은 차분하게 건물주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박사장님, 저는 이 서점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월세 인상 통보를 받고 정말 실망했습니다. 이 서점은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장소입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많은 추억과 의미를 만들어왔습니다."


박 씨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서연 씨,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나는 내 건물에서 더 많은 수익을 내야 한다고! 이건 비즈니스야, 감정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지."


서연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비즈니스요? 그러면 당신은 돈 냄새에만 취해서, 사람들의 삶과 꿈을 파괴해도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박사장님은 이 건물의 주인이지만, 우리도 이곳의 일부입니다. 우리도 권리가 있습니다."


박 씨는 비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권리? 그 권리가 나에게는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 나는 이 건물의 소유자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권리가 있어."


서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박사장님, 당신의 욕심이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돈에 취해 우리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서명 운동을 통해 이미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 서점과 상가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겁니다."


박 씨는 잠시 당황한 듯 보였다. "서명 운동? 그깟 서명 몇 장으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서연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네, 생각합니다. 우리는 당신과 싸우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겁니다. 언론에 우리의 상황을 알리고, 지방 의회와도 협력할 겁니다. 당신이 우리를 무시하고, 우리의 꿈을 짓밟으려 한다면, 우리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박 씨는 서연의 강한 태도에 놀랐지만, 여전히 비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라고. 내가 이길지, 네가 이길지 두고 보자고."


서연은 굳건히 말했다. "우리는 이미 이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질 겁니다. 박사장님, 당신이 돈에만 집착하고 우리의 삶을 파괴하려 한다면, 우리는 끝까지 저항할 겁니다. 이 서점은 단순한 상점이 아닙니다. 이곳은 우리의 꿈과 희망이 담긴 장소입니다."


박 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어디 두고 보자고!"

서연은 박 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다짐했다.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이 서점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거야.'


서연은 깊은숨을 내쉬며 원남동 서점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그 낙엽들이 이제는 더 이상 정신없이 굴러다니지 않기를 바라며, 서점 문을 닫고 다시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결심과 다짐이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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