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태용 Jul 31. 2024

#5 호로고루。

소설 연재

[ 2024. 9. 13.(금) "하루" 책방지기 휴가 입니다. ]


책방 문 앞에 여름휴가 안내 문구를 붙였다. 지난 6개월 동안 책방 오픈으로 분주했던 나날. 이제 좀 쉬고 싶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이왕이면 행복했던, 그런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추억….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었다. 지금은 별이 되어버린 내 남자친구, 현. 그와 함께 했던 장소를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연천 호로고루.


남자친구가 군생활을 연천에서 했다. 면회를 가면 항상 같이 갔던 곳. 지금은 가슴이 아파서 오랫동안 못 갔던 곳. 세상에서 날 가장 사랑했던 현이가 오늘따라 보고싶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인데, 그 여주인공이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오늘은 호로고루에 가서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지를지도 모르겠다.


차에 시동을 건다. 엔진음이 경쾌하다. 내 마음은 먹구름인데, 너는 맑음이구나. 그래, 너라도 밝아서 다행이다. 오늘 하루 만큼은 세상 걱정 다 잊어버리고 다 털어버리고 와야지. 너무 달려만 와서 그런지 내 몸 구석구석에서 배터리가 방전되기 직전의 경고음을 울려온다. 쉬어야 할 시간이다. 차창 밖의 풍경이 점차 바뀐다. 빌딩숲에서 진짜숲으로. 회색빛에서 황금빛으로. 저 앞에 스타벅스 연천점이 보인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목이 마르다. 드라이브 스루 한번 할까. 연천도 많이 바뀌었구나. 남자친구랑 연애할때는 없었던,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요. 얼음 가득 넣어주세요."


벌컥벌컥 마셨다. 추억이 있는 공간에 간다는 것은 가슴을 미친듯이 뛰게 만든다. 카페인은 충분히 채웠고, 이제 말라버린 감성만 충전하면 된다. 호로고루가 있는 장남면까지 이제 25km 남았다. 설렘과 그리움을 담아 악셀을 밟아본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 오늘만큼은 나와의 데이트를 해야지.


고즈넉한 가을. 드넓은 초원에 펼쳐진 해바라기 군락. 마치 황금빛 바다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인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임진강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멀리서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연은 호로고루의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아름답네, 호로고루. 너와 함께 왔던 곳을 이젠 나혼자 오는구나. 그곳은 춥진 않니? 여긴 벌써 가을이야. 적당히 시원하고 서늘한게 딱 데이트하기 좋은 날씨야. 비록 난 혼자왔지만….'


서연은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처럼 마음 속으로 크게 외쳤다, 남자친구를 향한 그리움을.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 것을, 떠난 후에야 뒤늦게 알았다. 바보처럼.


'현아, 하늘에서 나 좀 지켜봐줄래? 그리고, 우리 원남동 책방도….'

이전 04화 #4 건물주(主)가 아니라 건물주(酒)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