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0년, 서울. 태양이 떠오르자 초고층 빌딩의 유리 외벽이 금빛으로 반사되었다. 수백 개의 개인용 드론이 정교한 항로를 따라 하늘을 수놓았다. 지하도시의 심층부터 마천루의 첨탑까지, 인간들은 마치 거대한 기계의 부품처럼 정확하게 움직였다. 규율과 효율, 그것이 이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아침 7시 정각, 한하진의 관자놀이에 부착된 뇌파 센서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눈을 뜨기도 전에 그의 뇌는 이미 깨어나 있었다. 침대 옆 홀로그램 화면이 푸른빛으로 깜박이며 오늘의 수면 데이터를 표시했다.
"수면 효율 98.7%. 전날 대비 0.2% 상승. 최적의 수면 주기가 달성되었습니다."
하진은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완벽한 질서 속에 잠겨있었다. 현대화된 뉴서울의 스카이라인 너머로 옛 평양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였다. 통일 이후, 한반도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 발전의 중심에는 '뉴로맥스'가 있었다.
회사의 셔틀 드론이 정확히 7시 30분에 도착했다. 하진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탑승했다. 드론 내부의 생체 인식 센서가 모든 탑승자의 상태를 체크했다.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모든 탑승자의 뇌파가 안정적입니다."
드론의 인공지능이 상냥한 목소리로 알렸다. 창 밖으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빌딩 숲이 스쳐 지나갔다. 각 건물마다 설치된 무의식 통제 중계기가 희미한 청색광을 발산했다. 하진은 그 빛을 응시했다.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그 빛이 차갑게 느껴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하진 씨."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데이터 분석가 이서연이 다가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밝았지만, 눈빛에는 어딘가 불안한 기색이 서려있었다.
"어젯밤에 일부 구역에서 뇌파 동기화 오류가 발생했어요. 부장님이 오늘 중으로 검토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하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데스크로 향했다. 눈앞의 홀로스크린이 밝아지며 수많은 데이터가 떠올랐다. 각각의 그래프는 도시 전체 시민들의 무의식적 패턴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점심시간, 하진이 데이터를 확인하던 중이었다.
"이게 뭐지..."
화면 속 뇌파 그래프가 미세하게 떨렸다. 통제 시스템의 완벽한 리듬 속에서, 불협화음처럼 튀어나온 작은 틈. 그는 즉시 이상 신호를 추적했다.
구역 87-B, 시간대 23:42:15.
한 순간 여러 시민의 뇌파가 동시에 불규칙한 패턴을 보였다가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교란을 일으킨 것처럼.
등 뒤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감시부서의 윤태석이 유리벽 너머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진은 재빨리 화면을 전환했다.
"이상 현상을 발견하셨나요?"
서연이 다시 나타나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평소와는 다른 긴장감이 묻어있었다.
"아니... 별거 아닙니다. 단순한 시스템 노이즈예요."
하진은 태연한 척 대답했지만, 그의 뇌리에는 방금 전 본 그래프가 지워지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순간의 파형이 마음에 걸렸다. 어디서 본 듯한 패턴이었다.
적막한 공간, 하진은 홀로 사무실에 남았다. 화면 속 이상 신호를 다시 확인하던 중, 우연히 파일 하나를 발견했다.
[프로젝트 루시드 - 연구원 서윤희의 기록]
파일은 암호화되어 있었다. 하진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오늘 본 이상 신호가 자꾸 신경 쓰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디코딩을 시작했다.
화면에 흐릿한 영상이 떠올랐다. 한 여성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의식 통제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영상은 그대로 끊겼다. 하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그는 자신이 믿어온 모든 것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늦은 밤, 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이 차갑게 빛났다. 하진은 어둠 속에서 홀로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조작된 것인가?'
그의 관자놀이의 센서가 미세하게 깜박였다. 무의식 속 어딘가에서, 억눌린 자아가 깨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 기획의도 및 주제 ---
《무의식 통제사회》는 첨단 기술로 시민의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현대 사회의 흐름에서 영감을 받았다. 최근 중국에서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시민의 범죄 행위를 미리 감지하고 대응하려는 시도는 현실 세계에서 통제와 감시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소설은 기술 발전이 인간의 내면까지 침투할 때,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은 어디까지 보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근미래 사회의 감시 체제와 개인의 자아 상실이라는 문제를 SF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고자 한다.